대전공단내 산업.공작기계 주물업체인 D금속.

IMF 이전 월 3백t하던 일감이 최근에는 40~50t 수준으로 떨어졌다.

45명이 하던 일을 지금은 10명이 잔업없이 주4일만 근무한다.

"지금 하는 일은 전기로의 불씨를 지피기 위한 마지막 일감입니다"

아무런 표정없이 이런 얘기를 하는 회사 관계자의 얼굴에서는 체념이
읽혀졌다.

인천시 경서동 주물공단.

가동률은 50%로 떨어졌고 종업원수는 2천2백명에서 1천명 이하로
줄어들었다.

지난해말까지만 해도 일감이 밀려 밤을 낮처럼 밝혀놓고 일을 했지만
요즘은 오후 4시까지만 근무하고는 썰물처럼 빠져 나간다.

오후 6시면 공단은 문자 그대로 절간터같이 변한다.

IMF 불황의 골이 심화되면서 용접, 주물, 열처리, 도금 등 생산기반업종들
이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산업계 전반의 위축에 따른 주문감소로 가동율이 저하되고 매출액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불황여파는 즉각 다른 업종에 번진다.

업종 특성상 하청생산이 주류를 이루다 보니 늘 어음부도 공포증을 안고
살아간다.

특히 불황의 장기화는 설비투자와 신규창업을 원천적으로 막고 있다.

게다가 기술개발과 품질향상 활동이 자취를 감추면서 산업규모와 기술,
인력, 매출이 동시에 떨어지는 업계 공동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 주물 =부산경남지역 주물업체들이 몰려 있는 진해마천공단에서는 최근
들어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42개 업체중 8개사가 문을 닫았고 대부분의 업체들도 조업단축에 돌입한지
오래다.

이 때문에 올해 이 공단 입주업체들의 매출은 지난해 3천3백58억원보다
30% 이상 떨어지고 있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전국 주물 전문공단으로는 유일한 인천시 서구 경서동 주물공단도 주문량이
30%를 밑돌고 있다.

주물조합의 강현중 부장은 "그나마 경기를 버텨주던 관납물량과 단체수의
계약도 크게 줄어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대전지역에서는 이미 평화주물 만중금속 중원산업 등이 쓰러졌다.

대성금속의 박용기 생산과장은 "애들 비스켓 값만도 못한 일을 하고 있어
현상유지는 생각조차 못한다"고 어려움을 전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주물업체들의 현안은 최소한 전기로 가동만큼은 멈추지
않도록 하는게 됐다.

전기로는 한번 가동을 중단하면 고철로 변하기 때문이다.

재가동을 하기 위해서는 6개월 이상 소요된다.

주물업체들은 올들어 원자재 공동구매, 공동운송 등을 통해 한푼의 예산
이라도 절감하고 있으나 깊을대로 깊어진 불황의 골을 넘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다.

업체들은 IMF 이후 정부로부터 운전자금을 지원받았지만 대부분 은행이자를
갚는데 쓰고 있다.

그나마 은행에 예치된 운전자금이 동나면 쓰러질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 금형 =인천, 반월공단내 5백여 금형업체들은 올들어 조업률이 50%에도
미치지 못한다.

반월공단의 H금형은 올초 3억원의 시설투자를 한 뒤 고금리와 주문감소를
견디지 못해 부도를 내는 등 올들어 S,Y금형 등 손꼽히는 업체들이 잇달아
무너졌다.

부산지역 금형업체들도 IMF 불황으로 20% 이상의 매출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대기업들이 조업단축에 나서고 납품단가도 계속 낮출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에서 주로 반도체 금형을 하는 영진정밀은 지난 연말까지만해도 3명의
직원이 함께 일했으나 지금은 사장 혼자서 작업을 하고 있다.

대덕구 대화동에서 프라스틱사출 금형을 하는 대덕정밀금형은 더욱 심각
하다.

일감이 무려 지난해보다 90% 이상 줄었다.

전 같으면 직원 7명이 밤 10시까지 연장근무를 해도 납기를 맞추기 힘들
정도로 빠듯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장을 포함해 4명이 주간작업을 하는데 그치고 있다.

신영석 사장은 "새로운 금형주문을 받기보다는 기존 금형으로 주문물량을
찍어내 주는게 고작"이라고 말했다.

대구지역 금형업체들이 모여 있는 경산 진량공단과 대구3공단 등의 평균
가동량 역시 50%에도 못미친다.

특히 대구지역에 밀집된 자동차부품 업체들의 영업이 부진해 이같은 경향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금형업계의 걱정은 전문 기술인력의 유출.

최소한 3년 이상 종사해야 제대로 된 제품을 만들 수 있으나 최근 대규모
퇴사가 이뤄진데 이어 평균 재직기간이 2년에 불과해 앞으로가 더 우려된다
는 설명이다.

남동공단 동성금형의 김원묵 사장은 "꾸준한 기술개발을 해야 일본 등
선진기술을 따라갈 수 있는데도 IMF 이후 설비투자가 올스톱 되다시피 해
초정밀금형 등 첨단기술 개발은 엄두도 못내고 있다"고 전했다.

외국인근로자를 고용하고 싶어도 금형산업은 오랜 숙련기간을 통한 기술력
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이마저 쉽지 않다.

금형냉장고 부품 틀을 만들고 있는 양정공업사 박희영 부장은 "금형은
정밀기술과 5년이상의 숙련을 필요로 하는 핵심산업"이라며 "이같은 인력
체제로 가다간 5년후엔 전문가를 찾아볼 수 없을 지경이 될 것"이라고 지적
했다.

<> 도금 =인천과 반월.시화공단에는 1천1백여개의 도금업체가 몰려 있다.

이 가운데 20%인 2백20여개 업체가 부도가 났고 5백여개 업체가 부도위기에
몰려 있다는게 현장업계의 진단이다.

도금업계의 목줄을 죄는 것은 주문감소와 어음부도.주문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했던 건축자재 관련 수전금구류와 자동차부품, 전기부품에 대한 주문은
아예 끊긴 상태다.

남동공단내 서해도금단지 입주업체들의 경우 업체간 도금물량을 모아 처리
하는 시설공동화제를 도입하는 등 살아남기 위해 안간힘이다.

부산장림지역 도금업체들의 조업율도 30~40%대에 불과하다.

그나마 수주물량이 계속 감소하고 있어 채산성은 더욱 악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대전에는 2개 도금업체가 있었으나 이중 중앙도금공업사가 최근 문을
닫았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생산물량이 전년 대비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등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니켈 크롬 등 주요 약품 가격이 t당 7백원선에서 1천7백원선
으로 급등한데다 현금결제 요구까지 겹쳐 자금난마저 가중되고 있다.

<> 기타 =이밖에 열처리 업체들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거의 비슷하다.

대전 같은 경우 올해초 태양열처리공업사가 올해초 부도 1호로 첫 테이프를
끊었다.

현재 가동중인 업체들도 일감확보가 안돼 곤경에 처해 있다.

농기계부품 열처리를 하고 있는 충남열처리는 농기계판매가 급격히 줄어
들면서 주문량이 70% 이상 감소했다.

3명의 직원이 밤샘작업을 해오다 지금은 동업자 둘이서 한나절 일하는
정도다.

김수천 사장은 "열처리는 소규모 영세업체들이 주로 하고 있어 모두 도산
하면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산업전반에 미치는 파장이 엄청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 파장 및 대책 =부산 영화금속 최인영 사장은 "주물산업은 자동차소재
중장비 산업기계 농기계 등 기초소재산업에 필수적인 만큼 이 산업이
쓰러지면 국가경제회복은 그만큼 멀어진다"고 강조했다.

한 주물업체 관계자도 "일본같은 경우는 산업의 종자를 살리기 위해 주물
업체에 많은 지원을 하고 있다"며 "국내 주물업계가 도산하면 대기업들도
타격을 입게 되고 결국 수입단가가 높아져 경쟁력을 잃을게 뻔하다"며
다각적인 회생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당부했다.

남동도금의 최송만상무는 "중진공과 자치단체등에서 각종 육성자금을
지원하고 있으나 영세업체는 대출보증서를 끊을 재간이 없다"며 "현금
결제비중을 높이는 실질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중소기업청 배중환 사무관은 "주물 금형 도금 등의 기초산업이 쓰러지면
경기가 회복기로 돌아서도 전반적인 산업활성화를 이룰수 없다"며 "이들
산업을 살리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부산/인천/대구/대전 김태현 기자 hyun11@ 김희영 기자 songki@
신경원 기자 shinkis@ 이계주 기자 leeru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