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은 창업을 통해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은 물론 탄탄한
성장가도를 달려 고용을 확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각종 규제는 예비창업자와 기존 중소기업인의
의지를 꺾어버리고 있다.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규제완화를 추진하고 있다지만 완화만으로는
어림없다는 지적이 많다.

공대교수를 그만두고 벤처기업을 창업한 박모씨의 경우를 보자.

사업인허가를 받아 법인설립등기를 마친 그는 공장설립에 나섰다.

부지를 수소문하다 수도권 지역에 싼 값으로 나와있는 공장을 찾았다.

그대로 사용하면 될것 같아 그 공장을 사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미로같은 규제와의 숨바꼭질은 그때부터였다.

공장이 농지전용허가지역에 묶여있어 같은 업종이라도 재허가가 필요했다.

이미 설치돼있던 시설과 장치도 원래대로 환원해야 했다.

그리고나서 다시 전용허가를 신청했지만 복잡한 확인심사절차가 앞을
가로막았다.

먼저 농지관리위원회의 확인을 받은후에 군수와 도지사 심사및허가를 거쳐
농림부장관 허가까지 받아야 했다.

허가승인기간만도 70일이나 걸렸다.

공장을 찾아나선지 2년여만에 가까스로 설비를 갖추자 새로운 문제가
터졌다.

사업준비기간이 장기화되면서 투자자들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그는 급한 마음에 정부의 정책자금 5억원을 신청했다.

3개월만에 복잡한 기술심사와 기업실사를 거쳐 지원대상기업으로 선정됐다.

한숨돌리는 것도 잠시, 이제는 돈나오는 시간이 자꾸 늦어졌다.

자금지원 부처에서 기술심사를 받았지만 기술신용보증기금에서 재심사를
요구했다.

6개월을 매달린 끝에 은행문턱에 다다르니 이번엔 담보를 요구했다.

결국 신청자금의 절반에도 못미치는 2억원을 받아냈다.

3년여간 기술개발을 포기하다시피한채 회사설립과 자금확보를 위해
뛰어다녔지만 그에게 남은 것은 절망과 의욕상실이 전부였다.

정부 중소기업정책의 난맥상은 창업과정에서부터 시작된다.

제조업의 경우 중소기업 창업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산업용지취득과
공장설립이다.

그런데 지나치게 복잡한 인허가절차로 인해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고
있다.

현재 공장설립에 필요한 산업용지 취득및 개발을 위한 인허가에 약 2년이
걸린다.

게다가 서류도 평균 44건에 달한다.

선진국은 물론 우리나라보다 뒤떨어진 동남아국가들에 비해서도 2~7배나
소요되고 있다.

공장설립을 준비하는 기간동안 급변하는 시장환경에 대응하지 못하게
된다.

이를테면 무방비로 방치되는 셈이다.

실제 중소기업진흥공단의 설문조사결과 창업사업계획승인(공장설립승인)
기간이 법정시한(45일이내)을 넘기는 경우가 절반가량(47%)이나 됐다.

이 과정에서 창업자 4명중 3명이 복잡한 절차와 중복서류준비로 불필요한
시간과 인력을 낭비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이 성장단계에 들어설때도 자금 기술 경영지원등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자금지원의 경우 선택과 집중보다는 나눠주기식 배분이 많다.

그러다보니 정작 거액의 개발비가 필요한 곳엔 지원액이 부족하고
재무구조가 탄탄한 곳에 엉뚱한 자금이 흘러들어가는 해프닝이 벌어진다.

번잡한 행정절차를 거치다보면 지원시기도 적기를 놓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경북지역의 유망 벤처기업으로 알려진 K사는 국제금융공사(IFC)의
기업실사를 마치고 투자조인식만 앞두고 있었다.

그러나 일시적인 유동성위기에서 운전자금지원이 늦어져 부도를 내고
말았다.

물론 외자유치도 물거품이 됐다.

기술지원도 전문가가 확보되지 않아 형식적인 수준에 그치고 있다.

단적인 예로 인천 남동공단에 있는 B사는 최근 독일에서 도입한
자동화설비를 1백%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복잡한 영문매뉴얼을 해석하지 못해 몇가지 첨단기능에는 손도 못대고
있다.

기술지원단에 의뢰했지만 그곳에서도 뾰족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

이 회사는 결국 비싼 돈을 들여 독일업체의 전문가를 불러올 예정이다.

기협중앙회 관계자는 "정부 부처에 산재된 규제와 기존의 지원틀로는
중소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을 줄수 없다"며 "규제완화와 함께 현장중심의
신속한 원스톱서비스 체제를 갖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 정한영 기자 chy@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