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내리더니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서늘해졌다.

날씨가 서늘해지니 마음도 따라 서늘해지는 것 같다.

이럴 때마다 뭔가 따뜻한 것들이 그리워진다.

요즘처럼 사는 것이 어려울 땐 더욱 그렇다.

무슨 사건이다,무슨 위기다 해서 불안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며칠전 종각근처를 지나다 손수레에서 붕어빵 몇개를 샀다.

손에 쥐니 따뜻했다.

마음도 함께 따뜻해졌다.

그때 문득 40여년전의 붕어빵이 생각났다.

가난하고 척박했던 시절에 먹던 붕어빵이라 그랬는지 모른다.

옛말에 "가난하고 어려울때 사귄 친구는 잊어서는 안된다"고 한 것처럼
나도 그 붕어빵을 잊지않고 있다.

그 시절에는 붕어빵 사먹기도 쉽지 않았다.

물자가 귀하던 때라 설탕 대신 당원을 넣었고 팥이라곤 넣은듯 만듯 했지만
그나마 붕어빵을 사먹는 날은 신나는 날이었다.

그정도로 먹을 것이 귀한 시절이었다.

붕어빵으로 허기를 때우던 그 시절 그 사람들의 배고픔을, 배를 채우고도
허기진다고 아우성인 요즈음의 야타족들이 알기나 할까.

옛날엔 지금보다 훨씬 가난했지만 욕심이 없었고 이기적인 지금의 사람들
보다 훨씬 인정이 많았다.

그런 여유때문인지 찢어지게 가난했던 시절에도 "솟아날 구멍이 있겠지"라는
희망은 가질 수 있었던게 아닌가 싶다.

그 희망이 지금이야말로 절실히 필요한 때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이 희망보다는 욕망을, 선심보다는 욕심에 사로잡혀
있다.

물질이 풍부한만큼 욕심은 더욱 커지고 작은것에는 아예 만족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람의 관계조차 인정사정 보지않고 천륜도 인륜도 쉽게 저버린다.

양심불감증에 걸린 사람들이 도처에 있는 것같다.

정직하고 바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오히려 바보취급하면서 약삭빠르고 기회를
잘 잡는 사람들을 현명하다고들 한다.

어떤 끔찍한 사건이 터지면 처음엔 조금 놀랐다가 자기 일이 아니라며 곧
잊어버리거나 골치아픈 일이라며 아예 무관심한 사람들도 있다.

물론 나쁜일보다야 좋은일이 보기도 좋겠지만, 자기한테 이익이 없을 땐
언제라도 등돌리고 마는 세태가 아쉽기만 하다.

무슨일이든 이익이 되면 남보다 먼저 쟁취하려하고 남보다 많이 소유하려
한다.

그 소유욕때문에 남의 것을 양심의 가책없이 빼앗기도 한다.

공금을 억대로 먹고도 모르는 척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이 바로 IMF사태를
몰고온 주범들이 아닌가 싶다.

사람의 가치가 돈의 가치와 환산되는 세상.

이런 세상속에서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남을 지도해야할 사람들이 지도는 제대로 하지않고 돈벌 기도나 하고,
학생을 교육할 사람들이 교육은 제대로 하지 않고 교활해지니 이런 세상을
살만한 세상이라고 말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부모형제간에도 베풀기보다는 빼앗으려고 한다.

부모는 진정 자식들의 사표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식농사를 잘 지을 수 있겠는가.

풍작보다는 흉작이 될것이 뻔한 일일 것이다.

옛 어른들은 자식교육에도 사람됨됨이를 중요시했다.

어떤일이든 "선한 끝은 있다"는 말과 "지는 사람이 발뻗고 잔다"는 말로
언제나 양보하고 선하게 살아가라고 가르쳤다.

그런데 요즈음의 부모들은 "절대로 손해보지 말라"는 말과 "이겨야 기펴고
산다"는 말로 그릇되게 키운다.

양심이 아니라 양심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악덕이 미덕을 구축하고 있다.

도리는 커녕 비리나 저지르면서 그나마 순리대로 양심적으로 살려고 하는
사람들의 희망을 절망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럴땐 욕심을 선심으로, 욕망을 희망으로 바꿀수는 없을까 생각하게 된다.

"불확실한게 더 좋다, 희망이 있어서"란 말에 용기를 얻는다면 IMF한파도
훈풍으로 바꿀 수 있을 것만 같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면 차라리 붕어빵을 먹고도 배불렀던 그때, 40여년
전으로 타임머신이라도 타고 되돌아 가서 다시 시작할 수 있었으면...

가을이 깊어지니 이런 생각도 깊이 하게 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