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아마르티아 센(64) 교수는 후생경제학,
특히 빈곤과 기근의 원인을 밝혀내고 대안을 제시하는 분야에서 탁월한
업적을 쌓아 왔다.

센 교수는 최근에도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에 관한 다양한 글을 언론에
게재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주류경제학으로 부터 소외당해 있는 이런 분야에 대한 센교수의 관심은
단순한 학문적 관심 이상이기도 하다.

"민주주의는 경제발전에도 유익하다"는 그의 철학은 김대중 국민의 정부가
내세우는 "민주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주제와도 그리 다르지 않다.

그는 권위주의 정치체제일수록 빈곤과 기아문제에 취약하다고 지적하고
민주주의와 사회후생이 불가분의 관계임을 주장했다.

그의 특별기고문을 긴급 게재한다.

< 정리=임혁기자 limhyuc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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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경제성장에 장애가 된다"는 주장이 종종 제기되곤 한다.

"개혁을 위해서도 정치적 자유가 유보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인도 현대사가 그 단적인 예로 들먹여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할 통계적 증거는 거의 없다.

그보다는 오히려 표현의 자유를 비롯한 다양한 자유와 정치적 권리가
보장될 때 기근과 같은 재난을 피하기가 더 수월해진다.

실제로 지금까지의 역사를 돌이켜 볼 때 민주적 정치 체제와 언론 자유가
이루어진 나라에서는 기근이 발생하지 않았다.

역사상 참혹한 기근이 발생한 것은 고대 왕국과 현대의 권위주의적 사회,
원시적 부족사회와 현대의 기술관료적 독재체제, 북반구의 식민지 경제와
남반구의 신생독립국에서였다.

반면 독립된 주권을 누리는 나라, 정기적으로 선거가 실시되는 나라,
비판적 야당이 있는 나라,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 검열제도가 없는
나라에는 기근이 발생한 적이 없다.

정치적 권리와 경제적 요구의 이같은 관계는 지난 58-61년 중국에서 발생한
대기근의 사례가 잘 보여준다.

중국은 지난 79년 본격적인 경제개발을 추진하기 이전에도 경제개발 성과에
있어 인도보다 훨씬 성공적이었다.

예를 들어 중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79년 경제개혁에 착수하기 이전에
이미 70세에 육박했다.

그럼에도 중국은 기근을 막을 수 없었다.

중국의 대기근 기간중 거의 3천만명이 굶주림으로 희생됐다.

이는 43년에 발생한 인도 대기근 때의 아사자보다도 10배나 많은 것이다.

50년대 말에 시작된 소위 대약진 운동은 사실 시작부터가 대실패작이었다.

그러나 교조적인 중국정부는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똑같은 정책을 3년간
이나 더 추진했다.

선거가 정기적으로 실시되고 언론자유가 있는 나라에서라면 이같은 일이
벌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끔직한 재난의 와중에도 중국정부는 신문이나 야당으로부터 아무런
견제를 받지 않았다.

신문은 철저하게 정부통제하에 있었고 야당은 아예 존재하지도 않았다.

언론에 대한 통제는 정부자신도 오도하는 결과를 빚었다.

중국 정부는 자신의 선전에 스스로 도취됐다.

게다가 지방정부 관리들이 중앙당의 신뢰를 얻기 위해 경쟁적으로 장미빛
보고 만을 내놓는 바람에 진상을 파악할 수 없었다.

때문에 기근이 절정에 달했을 때도 중국당국은 실제 자신들이 보유한
것보다 1억t 이상 많은 식량을 확보한 것으로 믿고 있었다.

이 문제는 지금도 중국에서 되풀이 되고 있다.

79년의 경제개혁 이후에도 중국의 공식적인 정책은 "정치적 동기부여 없는
경제적 동기부여"에만 그 이론적 근거를 대고 있다.

다행히 요즘처럼 경제상황이 좋을 때는 민주주의의 역할은 그다지 아쉬울게
없다.

하지만 큰 정책적 오판이 생기면 이런 결함은 정말 큰 재난을 불러온다.

현대 중국에서의 민주화 운동의 중요성은 이런 측면에서 판단되야 한다.

중국만 이런 사정을 노출시키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현대 권위주의적인 정부들은 대부분이 경제 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정치적
권리를 억압해 왔다.

그러나 우리가 그 결과를 이미 잘알고 있듯이 이런 정책은 일시적으로는
성공하는 듯이 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이는 사회주의적 이념을 내건 나라건 자유주의적 이념을 내건 나라건
마찬가지다.

중국에 비해 인도는 독립 이후로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기근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는 인도가 민주주의를 채택한 덕분이다.

특히 인도가 최근 몇년간 비록 제한적이긴 하지만 나름대로의 경제성장을
이루어낸 과정을 보면 더욱 명확하다.

강압적인 정치적 환경보다는 우호적인 경제환경을 만들어 내는게 더 중요
하다는 것이다.

인디라 간디는 지난 70년대에 걸쳐 국민들의 정치적 권리와 인권을 억압
하고, 강제 불임등 강압적인 정책을 취했다.

유권자들은 이에 강력한 반기를 들었다.

결국 인디라 간디 정부는 선거절차에 의해 종식됐다.

오늘날에도 인도는 강압적 권력의 남용을 방지하거나 잘못된 정책을 신속
하게 수정할 수 있는 유연성의 측면에 있어 중국보다 훨씬 앞서 있다.

민주주의는 반대당으로 하여금 잘못된 정책의 변화를 촉구하도록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인도가 취약한 교육 보건 토지개혁 등의 사회적 문제들을 안고 있는 데에는
정부 뿐만 아니라 야당의 잘못도 크다.

물론 민주주의를 채택하는 대신에 아주 훌륭한 지도자를 갖는 것도 한
방법이다.

실제 어떤 나라의 일부 지도자들은 정치적 자유보다는 개인적 헌신과 정열
로 더 많은 것을 성취하기도 했다.

훌륭한 교육과 보건체계를 설립한 중국의 마오쩌뚱이 대표적 예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가치는 폄하될 수 없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민주주의가 완벽하게 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게
훨씬 중요하다.

정치지도자 개인의 역량에 의존할 경우 한번 실수를 하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

반면 민주주의는 어떤 실수가 발생하더라도 대중의 참여를 통해 이를 시정
하는게 가능하다.

바로 이점이 민주주의의 최대 장점이다.

그러나 민주주의가 제공하는 기회를 최대한 활용하느냐의 여부는 전적으로
국민들에게 달려 있다.

예컨대 기초교육 보건 등 사회적 발전과 남녀평등, 계층 통합, 군비 억제
같은 것들을 원한다면 국민들이 앞장서 이를 요구해야 한다.

정치에서도 경제에서와 마찬가지로 수요가 공급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인도의 앞날은 다양한 이해관계를 어떻게 통합할 것이냐에
좌우될 것이다.

그 이해관계란 민주주의 체제의 유지, 교육 보건 등에서의 급격한 사회적
진보, 경제적 확장의 고취 등이다.

인도는 지난 반세기동안 이같은 이해관계의 통합된 접근을 무시함으로써
실패를 겪어 왔다.

그리고 특히 사회발전을 무시하는 경향은 지금도 여전하다.

사회발전 수준이 높은 곳, 특히 케랄라주 같은 곳에서는 정책의 우선
순위를 경제적 확대에 두어야 한다.

그러나 나라 전체로는 사회발전의 부재는 비생산적인 정책만큼이나 발전에
큰 장애가 된다.

사회적 무관심에 대한 벌칙은 매우 커질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경제 개혁 과정과 정치적 권리에 대한 요구가 양립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지만 그렇지 않다.

경제발전은 사회발전에 대한 요구와 분리될 수 없다.

인도에서의 불평등은 단지 사회정의에 대한 심각한 장애일 뿐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진보에 중대한 장애요인이 된다.

문맹, 열악한 보건, 경제적 불안정, 여성의 권익에 대한 무관심의 폐해는
약자에만 미치는 것이 아니다.

지배계층 역시 중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권위적인 통치체제로부터 말할수
없는 피해를 입는다.

사회적 기회의 불평등이야 말로 인도의 사회적 건강을 해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이 원칙은 다른 개발도상에 있는 나라들에도 모두 동일하게 적용된다.

잠재적 경제 성장의 사슬은 가장 취약한 부분에서 끊어지게 돼 있다.

인도의 민주주의 달성은 원칙적으로 모든 국민에게 권력을 부여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권력의 분점이 심각한 불평등을 보이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회적 성취가 극히 불평등하다는 것이다.

인구의 절반이 문맹임에도 고등교육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고 의료서비스도
마찬가지로 확산되는 중이다.

사회발전에 필요한 충분하고도 기본적인 경제적 지원이 결여되고 있는
현실은 과도한 군비지출에 의해 거듭 확대된다.

보다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희망은 사회적 기회의 공유에 달려 있다.

이는 참여적 경제성장의 중요한 전제조건이다.

따라서 사회문제에서의 평등은 공평한 삶의 질 향상을 달성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 LA타임즈신디케이트 본사 독점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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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 1933년 인도 뱅골 출생
<> 53년 인도 캘커타대, 55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졸업
<> 59년 캐임브리지대 경제학 박사
<> 57~63년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칼리지 연구원
<> 63~88년 인도 델리대, 영국 옥스포드대 교수
<> 88~97년 미국 하버드대 교수
<> 98~ 케임브리지대 트리니티칼리지 학장
<> 노벨 경제학상 수상

< 저서 > "기술의 선택(60년)" "파레토적 자유주의의 불가능성(70)"
"집단적 선택과 사회후생(71)" "경제적 불평등에 관하여(73)"
"고용 기술 발전(75)" "빈곤과 기근:권리와 박탈에 대한 소론(81)"
"선택 계측 후생(82)" 등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