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가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언제 빠져 나갈지 모르는 긴 암흑 속의 행로다.

아시아에서 시작된 경제위기는 러시아와 중남미를 한바퀴 돌아 세계경제의
중심인 미국까지 집어 삼킬 태세로 확산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제 헤지펀드들의 부실이라는 새로운 복병이 등장했고
기축통화인 달러화조차 하루에 10% 가까이 요동을 쳐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세계경제를 살리자는 목소리는 요란하지만 정작 시장의 불안을 잠재울
만한 대안은 늘 "논의중"이다.

과연 세계경제는 동시공황이라는 파국을 면할 수 있을 것인가.

지구촌 주요 포스트에 위치한 해외특파원들의 취재와 분석을 통해 세계경제
의 현황과 전망을 점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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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경제가 막다른 골목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미 모라토리엄(외채 지불유예)를 선언했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아예
붕괴상태로 가는 양상이다.

최근 은행선물거래에 대한 지급을 중단시킨 것이 불길한 징조의 신호다.

치솟는 물가로 일부지역에서는 경제비상사태가 선포되기도 했다.

루블화가치는 올초 달러당 5.9루블에서 15.9루블선으로, 주가(RTS)는
4백10포인트에서 45포인트선으로 폭락했다.

은행들은 달러화 예금을 내주지 않고 있다.

사실상 지급불능 상태이기 때문이다.

정부 역시 지급능력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공무원들에게조차 봉급을 주지 못하고 있다.

위스키 등 물건으로 대신 주는 지방이 속출하고 있다.

물가상승에 대한 항의시위는 옐친 대통령에 대한 하야요구시위로 바뀌고
있다.

노동자들의 파업도 연일 벌어지고 있다.

러시아를 수렁에서 빼내줄수 있는 유일한 힘은 국제통화기금(IMF) 등의
서방 지원이다.

그러나 서방국들은 러시아를 외면한지 오래다.

서방국이 자금지원의 조건으로 내걸고 있는 경제구조 개혁정책이 제대로
추진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IMF는 "러시아의 경제회생대책이 불충분하다"며 14일로 예정됐던 모스크바
방문을 무기한 연기했다.

이에따라 당초 이달중 IMF가 제공하기로 했던 25억달러의 구제금융 지원
자금의 집행도 무기연기됐다.

최근 워싱턴에서 열렸던 IMF 총회에서는 러시아문제가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더 큰 문제는 모스크바에서 "경제정책 실종"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점.

정부내 정책담당자들은 위기극복 방안을 놓고 사사건건 마찰을 빚으며
제대로 된 경기대책을 하나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보리스 옐친 대통령은 체르노미르딘 전 총리서리의 인준을 둘러싼 의회측
과의 힘겨루기에서 패배한후 권력누수로 신음하고 있다.

최근에는 건강이상설까지 확산돼 조기퇴진의 위기에 몰리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방문이후에는 모든 공식일정을 취소하고 또다시 요양상태에
들어갔다.

이런 와중에 러시아 공산당은 옐친 대통령에 대한 탄핵동의안을 논의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정치가 통채로 실종된 상태나 다름없다.

프리마코프 총리등 정부내 핵심 세력들은 경제가 악화되자 구소련식 통제
체제로의 회귀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있다.

그를 둘러싼 경제자문단들은 "돈을 찍어서라도 노동자들의 밀린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는 소비에트사회주의식 정책을 지지하고 있다.

프리마코프 총리는 그러나 구소련식 계획경제체제로의 회귀가 가져올 국제
고립을 우려, 갈팡지팡하고 있다.

일부 서방전문가들은 러시아가 경제난을 타개하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
무기 수출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하고 있다.

< 바르샤바=김식 특파원 sik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