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의 효율성을 높이려면 무엇보다 이에 대한 신뢰성이 전제돼야 한다.
그렇지못하면 혼란을 자초하고 그에 따른 비용부담만 높아진다. 요즈음
정부의 경제정책은 우선순위가 뒤섞이고 완급이 가려지지 못해 불신의 벽이
점점 높아가고 있다는게 경제계의 평가다. 얼마전 대한상공회의소가 일반기
업과 금융기관의 자금담당 실무자들을 대상으로 "정부 경제정책에 대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정책수립과 실행면에서 모두 1백점 만점에 60점에도
미달, 낙제점이었다고 한다. 매우 우려할만 한 일이다.

특히 정부 정책이 현실을 감안하지 않은채 우격다짐식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은 더욱 문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5대그룹의 빅딜안에 대한 정부의
대응이 그렇고, 대기업들의 내부자거래 과징금 이의신청에 대한 공정거래
위원회의 기각 결정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재계가 진통끝에 내놓은 빅딜안에 대한 정부의 대응조치는 한마디로 모든
문제를 관주도로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번 냉정히 생각해 보자.
대규모 사업을 기업그룹들끼리 바꾸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인가. 그것도
불과 몇달사이에 구체적인 결과를 내놓으라고 윽박지르는 것은 우물가에서
숭늉찾는 격이다. 어려운 여건하에서 그 정도의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은
오히려 격려받아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당초 정부가 빅딜은 자율추진을 원칙으로 하겠다고 강조한 것도 그로 인한
부작용을 최소화하자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런 정부가 이제는 은행을 통해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을 추진하겠다는 등 개입의사를 표명한 것은 기업
현실을 도외시 한 성급한 처사가 아닐 수 없다.

5대그룹의 부당내부거래 과징금부과에 대한 이의신청을 공정위가 기각한
것도 상당부분 5대그룹의 빅딜을 압박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달말께로 예정된 6대이하 30대그룹에 대한 3차 내부거래조사에 5대그룹을
다시 포함시켜 조사하겠다는 공정위의 공개적인 언급으로 보아 무리한 추측은
아닌 것같다. 제도적으로 허용된 정당한 기업의 대차거래를 계열기업과의
거래라 해서 내부거래로 간주해 과징금을 매긴 것도 문제지만 이를 처리하는
정부의 자세가 과거의 관치시대로 후퇴하는 것같아 더욱 걱정스럽다.

지금 우리경제의 최대과제는 내수부진에 따른 산업기반의 붕괴방지다.
얼마전 정부가 경기부양에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두겠다고 발표한 것도 그
때문이 아닌가. 경기를 살리는 첩경은 정책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기업
의욕을 부추기는 것이다.

우리는 최근 빅딜추진과 공정위의 내부자 거래조사를 둘러싸고 정부와
재계간의 불신이 커지고 있는데 대해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경기를 살리는
직접 당사자인 기업을 격려하고 지원하는 것이 지금 정부가 취해야 할
바람직한 자세일 것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는 여유를 찾아야 할 때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