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는 것은 스캔들"

타인에 대해 엄격하면서 스스로에게는 관대한 사람을 빗대 흔히 하는
비유다.

미국이 요즘 국제 경제계로부터 이런 비난을 듣고 있다.

해외 각국에 대해 투명성이니 불공정거래 규제니 하는 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를 설파해 온 미국이 정작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제대로 단속
하지 않았다는 비난이다.

롱 텀 캐피털 매니지먼트라는 미국의 헤지펀드가 금융당국으로부터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은채 온갖 불투명하고 투기적인 거래를 벌였던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월가의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틈만 보이면 회계장부 조작과 부당한 내부거래
를 일삼고 있다는 것은 미국 내에서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미국 유수의 부동산.호텔 지주회사인 시댄트 그룹이 주가를 관리하기 위해
회계장부를 조작한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것을 비롯해 수많은 미국기업들
이 이런 "비리"에 중독돼 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최근 경제 주간지인 비즈니스위크가 미국 기업의 재무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조사 대상자의 12%가 회사의 최고 경영자로부터 "지시"를 받고 회계장부를
조작한 적이 있다고 응답한 것이다.

이같은 요구를 받았지만 거부했다는 응답자도 55%에 달했다.

미국기업의재무 담당자들의 무려 77%가 회사 최고위층으로부터 부당한
회계조작 압력을 받고 있다는 얘기다.

상당수의 월가 투자전문가들이 내부거래를 통해 부당이득을 챙기고 있다는
사실도 드러난 비밀이다.

최근 살로먼스미스바니증권의 브로커 4명이 내부자거래를 통해 1백80만달러
에 달하는 불법 투자이익을 챙긴 혐의로 연방검찰에 체포되는 등 굵직한
불법행위가 잇달아 미국의 주요신문을 장식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법망에 걸리는 것은 잔챙이들일 뿐 조직적인 정보조작 등을
통해 거액을 챙긴 "대어"들에 대해서는 당국이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가 높다.

미국 정부가 한국과 일본 등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불투명한 회계처리와
불공정 거래를 방치한 것이 외환 위기의 원인"이라며 눈을 부릅떠 온 것에
비추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미국이 주창해 "글로벌 스탠더드"로 이미 자리잡은 최저임금제 역시 출발점
이 강자의 기득권 보호를 위한 포장에 불과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지난 38년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에 의해 도입된 최저임금법은 미국
남부 신흥 공업지역에 대한 동북부(뉴 잉글랜드)지방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됐다는 것이다.

당시 뉴 잉글랜드 지역에 몰려있던 섬유업체들이 보다 싼 임금과 높은
생산성을 좇아 공장을 남부지방으로 속속 이전하자 이에 제동을 걸기 위해
들고 나온 것이 최저임금법이었다는 얘기다.

실제로 최저 임금법이 도입된 이후 7년 새 최저임금이 무려 60% 이상이나
상향조정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강자의 논리"의 압권은 최근 미국을 비롯한 세계
금융시장을 혼돈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헤지펀드에 대한 미국 금융당국의
구제금융이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월가 금융기관들로 하여금 롱 텀 캐피털에 대해
40억달러에 달하는 긴급 구제금융을 수혈토록 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미국정부가 한국 일본 등에 대해 "부실기업과 금융기관에 대해 구제금융을
해 줌으로써 건전한 금융기관까지 망쳤다"며 비판했던 이른바 "호송(convoy)
시스템"을 그대로 자국 금융계에 적용한 것이다.

이 바람에 국제 금융시장의 좌초로 가뜩이나 타격을 받은 다른 미국
금융기관들의 어려움은 오해려 더 심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는 더 이상 특정지역이나 금융기관만의 문제가
아니다.

"강자의 논리"에 스스로 포획당한 미국부터 시급해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