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계 국가의 절반이 위기상황에 빠져 있다.

2차대전이후 50년만에 닥친 최악의 상황이다.

한국 역시 사상초유의 난관을 겪고 있다.

각 국가들은 경쟁적으로 다른 국가에 짐을 떠넘기려 하고 있다.

홀로 건재하던 미국 경제마저 거품이 꺼지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기업체와 금융기관 근로자들은 모두 막연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

그러나 위기는 또한 기회이기도 하다.

살아남는 기업과 스러지는 기업,강대국과 약소국의 운명이 이 참에
갈리고 세계의 역사는 다시 쓰여질 것이다.

역사의 흐름과 경제의 맥을 제대로 짚고 앞서 나가는 그룹이 21세기의
주도권을 쥐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대격변의 시기를 맞고도 위기의 원인과 처방에 대한
의견들이 뚜렷한 흐름으로 형성되지 못한채 산발적으로 제기될 뿐이다.

또 국제적인 자금의 이동등 경제적 관점에서의 분석에만 의존하고
있다.

한국경제신문은 창간 34주년을 맞아 국내외 석학과의 대담과 기고를
통해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의 나아갈 길을 모색하기로 했다.

각 분야의 석학들이 등장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

[[[ 한국경제 ]]]

김태동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전철환 한국은행총재, 이진순 KDI(한국개발
연구원)원장, 윤원배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등 국민의 정부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이들은 ''학현인맥''이다.

모두 변형윤 서울대 명예교수의 제자인 동시에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을
통해 사회운동을 함께 해온 동지들이다.

학현은 변 교수의 호.

그러나 학현인맥의 산실인 서울사회경제연구소(지난 93년 학현연구실에서
이름을 바꿈)의 서초동 사무실은 향나무로 둘러싸여 조용하고 소박한 분위기
만이 흐르고 있었다.

아직도 대중교통을 고집하는 변 교수의 ''딸깍발이'' 정신이 살아 숨쉬는
듯했다.

지난 96년 고희를 넘긴 변 교수는 지금도 이 연구소에 매일 출근한다.

한국경제신문은 창간 34주년을 맞아 최근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대표
공동위원장으로 위촉된 원로경제학자 변형윤 교수를 서울 서초동 연구소
에서 만나 한국경제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들어봤다.

변 교수는 위원장이라는 직책보다는 서울대 명예교수가 좋다며 교수라고
불러 달라고 주문했다.

-----------------------------------------------------------------------

[ 만난 사람 = 박영균 < 경제부장 > ]

- 현재 위기의 본질을 놓고 학자들간에 얘기들이 많습니다.

또 IMF(국제통화기금)의 처방에 대한 논란도 있습니다.

<> 변 교수 = 지금의 위기는 경제위기죠.

외환위기 금융위기가 나아가서 총체적 위기로 이어진 것 아니겠습니까.

사람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62년부터 시작된 경제개발계획의 부작용이
쌓였다가 폭발한 것으로 봅니다.

경제개발계획의 부작용을 어느정도 해결하면서 왔어야 하는데 아무리
지적해도 성장만이 좋은 걸로 알고 밀어붙였던 거죠.

1차5개년계획이 끝난 뒤만해도 도시와 농업의 소득분배문제에 대한 우려가
나왔단 말이에요.

1~2년동안 조정기간을 두고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왔어야 합니다.

그동안에 두 세번의 불경기가 있었습니다.

74년엔 1차 오일쇼크가 왔고 79년부터 82년까지 2차 오일쇼크가 있었습니다.

그것보다 규모는 작지만 불황도 있었는데 불황의 장점을 살리지 못했습니다.

불황은 실업자가 생기는 단점이 있으나 기업 가계, 또 한 나라 경제의
거품을 빼게 해주는 장점이 있습니다.

장점을 살리지 못하다 보니까 여러가지 부작용이 한번에 폭발한 것입니다.

- 국제금융시장의 교란이라든지 하는 외부요인은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변 교수 = 한국은 외부에서 주는 쇼크에 약해요.

조정과정을 거쳐서 국제환경에 영향을 덜 받도록 "완충장치"를 만들었어야
했는데 그걸 못한 겁니다.

국제환경에 적응력있는 나라에 비해 여러가지로 쇼크를 더 크게
받았다고 볼 수 있죠.

- 조금 구체적으로 보면 관료의 지나친 간섭이나 대기업의 방만한 경영
또는 금융기관 대출관행등을 원인으로 지적하기도 하는데요.

<> 변 교수 = 그런 것들이 다 문제인데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그냥 성장만 주장한 것이란 말입니다.

국민들도 1인당 GNP(국민총생산)가 커지면 부자가 되는 걸로 생각했는데
그게 잘못이었죠.

물론 국민들이 그런 생각을 갖게 한 정부에 1차적인 책임이 있습니다만.

- IMF에서 5백70억달러를 지원하면서 여러가지 프로그램을 제시했는데 IMF
처방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최근 이 처방이 잘못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는데요.

<> 변 교수 = 나눠서 봐야 합니다.

하나는 금융통화 재정정책을 포함한 거시경제정책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긴축에 대한 논란이 있을 것 같습니다.

또 한가지가 구조개혁인데 여기에 대해서는 처방이 잘못됐다는 얘기에
찬성하지 않습니다.

기업들 자신이 국제경쟁력을 강화시켜 구조개혁을 다 했다면 이런 상태까지
오지 않았을 겁니다.

- 정부의 긴축완화와 구조조정이 상치되지 않느냐는 시각도 있는데요.

<> 변 교수 = IMF프로그램에 따라서 구조조정은 하게 돼 있습니다.

그런데 실업자도 많이 생기고 고통이 따르니까 업계를 중심으로 확대정책을
써달라고 하지 않습니까.

내가 볼때 부양정책을 쓰면 병을 치료하다가 중간에 그만두는 것입니다.

그러면 병이 낫다가 다시 도지고 더 독한 약을 써야 되는 식이 됩니다.

그러니까 구조조정을 계속 해야되는 것이죠.문제는 구조조정과 긴축을
함께 하다보니 예상보다 힘들게 된 게 사실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구조개혁을 지속해가면서 부분적으론 기업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정책도 펴야 합니다.

그러나 구조개혁은 해야 합니다.

그러지 않고도 기업이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살아갈수 있다면 구태여 할게
뭐 있습니까.

그렇게 할수 없다는 것이 이번에 드러나지 않았습니까.

- 실업자가 증가하면서 사회불안도 우려되고 있는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합니까.

<> 변 교수 = 궁극적으로는 기업이 많이 생겨서 실업자를 흡수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장기적인 대책이죠.

2~3년동안 단기간에 실직자들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장 일자리를 잃는 사람에 대해서는 임시 일자리를 만들어서 목에 풀칠
이라도 하게 해야하지 않겠어요.

사회안전망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그래도 계속적으로 사회간접자본을 확충하는데 주력했으면 좋겠습니다.

수출을 지원해 주는 도로 항만 등을 건설하면 일자리도 늘릴 수 있으니
두가지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겁니다.

- 유럽국가들은 경제정책의 최우선이 고용창출입니다.

아시아쪽 자본도 많이 유치했는데 자본유치보다도 실업을 해소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인 것 같습니다.

미국의 경우 좀더 경쟁을 촉진함으로써 효율을 높이는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경우는 앞으로 어떤식으로 가는게 좋겠습니까.

<> 변 교수 = 유럽은 사실 실업률이 굉장히 높습니다.

구조조정의 결과라고도 할수 있죠.

그렇기 때문에 실업대책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일본과 미국도 마찬가지예요.

다만 유럽보다는 여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너무 실업문제를 내세우면 구조조정하고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한국의 경우 두가지 면에서 아직도 이해가 안갑니다.

하나가 농촌같은 데에 인력이 모자라는데 잘 가지 않으려고 하죠.또
3D업종도 기피합니다.

나라면 힘이 들고 더러운 쪽에도 갈 것 같은데 아직도 실업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모르는 것 같아요.

- 정부가 지향하고 있는 경제모델이 미국식인 것같기도 하고 독일식인 것
같기도 하고 종잡을 수가 없는데요.

<> 변 교수 = 독일식은 일본식이라고 볼수 있습니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기업이 이익을 못낼때 으레 해고하는 것으로 돼있습니다.

이는 사회안전망이 돼있으니까 가능한 것입니다.

꼭 미국식으로 해야한다는 것은 말도 안돼요.

말하자면 단계를 거쳐야지 어느날 갑자기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식으로 하다가는 재벌도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사실 한때는 일본이 성공한 나라라면서 일본을 배우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은 미국이 성공한 나라라고 하고..

10년 20년 놓고 보면 달라집니다.

선진국의 경험은 그게 언제의 경험인지를 감안해 우리 수준과 사정에
맞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 동남아에서 시작된 위기가 수그러들기를 바랐는데 러시아 브라질 등으로
확산됐습니다.

국제적으로 IMF체제말고 다른 보완책이 필요한게 아니냐는 논의가 일고
있습니다.

<> 변 교수 = 세계가 하나가 됐다는 겁니다.

정보화 세계화시대의 현상입니다.

전에는 일정한 관계를 갖고 있는 나라끼리 영향을 주고 받았는데 이제는
그게 아니라 서로 얽혀서 한 군데서 위기가 터지면 다른 데도 위기를
맞습니다.

이익을 목적으로 왔다갔다하는 핫머니와 헤지펀드가 큰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규제는 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어떻게 할수 있느냐가 문제이긴 합니다만.

핫머니는 사방에 다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을 감안해야 합니다.

- 경제의 큰 그림을 그리는 중심은 경제관료들입니다.

현 경제팀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 변 교수 = 시작한지 불과 8개월밖에 안되지 않았습니까.

그걸 가지고 얘기하긴 힘듭니다.

거기다가 새정부는 공동정부죠.

두 그룹이 서로 협의해서 하는데 생각을 조정하기도 힘들 겁니다.

일단 열심히 하고 있다고 봅니다.

- 외국인 투자자들은 한국이 시장경제가 아닌것 같다는 말을 많이 합니다.

몇년 전만 해도 금융기관은 관리하기 어렵다고 들어오지 말라 했다고 주장
하는 외국인도 있습니다.

그만큼 규제가 심하다는 얘깁니다.

<> 변 교수 = 규제를 풀어야 합니다.

미국사람들은 디레귤레이션(deregulation)이라고 합니다.

규제완화가 아니라 규제철폐입니다.

규제완화는 푸는 것도 아니고 안 푸는 것도 아닙니다.

규제는 가능한한 없애야 정부관리의 재량권이 줄어들고 개입도 줄어들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또 하나 함정이 있습니다.

규제를 덮어놓고 풀수는 없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많아서 형평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효율쪽으로 무게를 두라는 것이지 형평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시장논리에 맡기다보면 소득분배와 사회보장이 약화될수 있는데 그런 것을
막아주는게 정부입니다.

정부로서는 최대한도로 규제를 철폐해야 하지만 보완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 세계적인 추세가 정부소유 공기업을 과감히 민영화해서 효율을 높이는
추세입니다.

우리도 계속 추진했지만 제대로 안되고 있습니다만.

<> 변 교수 = 공공성을 띠는 분야에는 공기업이 있어야 합니다만 효율이
떨어지는게 문제라고 봅니다.

신자유 신보수주의의 산물이 민영화인데 점차 선진국에서조차 신자유주의와
신보수주의를 내세웠던 정권이 퇴조하고 있습니다.

형평의 문제가 대두된 것으로 봐야 합니다.

유행을 따라가기보다 역사적으로 길게 보고 장단점을 잘 판단해야 합니다.

- 얼마전에 KDI등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한 "DJ노믹스"를
내놨는데 우리 상황에 잘 접목이 되리라고 보시는지요.

<> 변 교수 = 동아시아의 경험을 토대로 독재국가가 성장률이 높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한 30년동안 한 결과가 총체적 경제위기 아닙니까.

민주주의와 고성장은 병행할 수 있습니다.

- 제2건국추진위원회는 어떻게 돼가고 있습니까.

<> 변 교수 = 정식 출범한 것이 10월2일이에요.

추석 빼면 며칠되지 않았습니다.

이어령 교수가 위원장인 상임위원회에서 일을 많이 할 것이고 실무진에서
안건들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정리=김성택 기자 idnt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0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