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금융노련 산하 9개 은행노조들이 전면파업을 벌이기로 결의한 날짜가
바로 내일로 다가왔는데도 노사대치 상황에 아무런 변화가 없어 여간 걱정이
아니다. 금융구조조정 1차 시한을 앞두고 전면파업 사태가 벌어질 경우
금융구조조정의 차질 및 국가신인도 추락은 물론이고 당장 월말에다 추석까지
겹친 자금시장에 엄청난 충격을 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심각한 경제난을 감안해 보다 유연한 자세를 보여주도록 촉구해온 여론을
외면한채 전면파업 하루전이라는 벼랑끝 상황을 맞게 된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특히 설마 전면파업까지 가겠느냐는 정부와 은행측의
안일한 생각은 금물이다. 지금이라도 금융당국 및 은행노사는 최악의 파국을
피하기 위한 대타협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노사양쪽이 모두 공감할 수 있는 원칙을 확인하고 이견을 보이고
있는 문제들에 대해 현실성 있는 대안을 내놓는 진지한 자세를 보여야 한다.
금융구조조정에 따라 대규모 인원감축이 불가피하다는 정부측의 원칙고수나,
일단 파업을 벌여 유리한 협상위치를 차지하고 보자는 노조측의 강경전략은
노사간의 타협여지만 좁힐뿐 협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우선 은행노사는 감원규모와 시기 및 퇴직위로금액 등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갖고 당장 협상을 시작해야 한다. 또한 금융당국은 노사자율협상에
장애가 되는 지침을 최대한 완화해줘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금감위는 이미
모든 은행직원을 일률적으로 40%씩 줄이라는 뜻은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이밖에도 은행생산성 향상지침을 무리하게 적용할 필요가 있을까 의문이다.

오는 2000년까지 은행의 1인당 생산성을 외국 선진은행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금융당국의 지침이 어떤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는지
모르겠지만 현실적으로 이 지침을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개인수표와
신용카드가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정책금융이나 국고수납업무 대행 등의
부담이 없는 선진외국의 은행들과 국내은행의 생산성을 똑같이 비교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도 금융당국이 외국 선진은행의 생산성을 근거로 감원규모를
제시함으로써 노사협상의 여지를 불필요하게 제한하고 결과적으로 노사불신을
쌓은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물론 이렇게 된데에는 은행노조들이 인원
감축의 불가피성을 전면 부인하는 강경자세를 고수해온 탓도 없지 않다.

아직도 금융당국은 은행생산성을 외국은행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한다는
원칙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예외없는 원칙이 없듯이
아무리 좋은 원칙이라도 상황을 봐가며 무리없게 적용해야 한다. 부실은행의
파산처리 원칙을 강조해왔지만 막상 대형 헷지펀드의 파산위기로 금융시장
교란이 우려되자 구제금융을 결정한 미국 금융당국의 융통성 있는 자세가
아쉬운 시점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