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이 사정바람 속에서 극한대치 상태를 계속하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지금 대다수 국민들은 기업도산과 구조조정으로 직장을
잃었거나 수입이 줄어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한 심정이다. 게다가
하루빨리 처리해야 할 민생 및 개혁법안들이 쌓여 있는데 여야가 정기국회
까지 공전시키며 대립하고 있어 더욱 한심하다.

현재 국회에는 3백50건에 이르는 각종 법안 및 결의안들이 계류돼 있는데다
정부는 이번 정기국회에 구조조정 및 실업대책 등과 관련해 2백40건의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사정이 이러니 설사 국회가 어렵게 정상화된다 해도
법률안들을 졸속심의한 뒤 무더기로 통과시키는 일이 이번에도 되풀이 될
가능성이 큰 실정이다.

오랫동안 이같은 정치파행에 익숙해진 많은 국민들이 현재 정치권에 대해
바라는 것은 단 한가지 뿐이다. 당면한 경제위기 극복 및 서민생활 안정에
더이상 걸림돌이 되지 말라는 것이다. 여야는 이러한 국민들의 바람을
직시하고 서둘러 정기국회 운영일정을 협의하고 국정감사와 민생 및 개혁법안
그리고 내년도 예산안을 성실하게 심의함으로써 이제부터라도 국난극복에
동참해야 할 것이다.

다만 민생법안 처리가 시급하다고 여권단독으로 정기국회를 운영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여권은 지난 18일 국회에서 열린 국민회의.자민련
합동의원총회에서 이번 주말까지 한나라당이 정기국회에 참여하지 않을 경우
상법과 부가가치세법 개정안 등 시급한 24개 민생법안을 단독으로
처리하겠다고 밝혔지만 국회정상화 노력을 끝까지 포기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미 이기택 한나라당 전 총재대행이 단식에 돌입한 마당에 여권마저
단독국회를 기정사실화 하면 정국경색이 더욱 심해져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
사정을 한층 더 어렵게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여권이 추진중인
경제청문회나 정치개혁도 야당의 참여없이는 모양새 좋게 이루기 어려운 것이
사실인만큼 여야는 국회정상화를 위해 한발짝씩 양보해야 할 것이다.

물론 정치권은 정치복원과 야합을 혼동해서는 안된다. 김대중대통령도
강조했듯이 부패추방 없이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또한 이번 기회에 모든 국민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돼온 정치권의 해묵은
비리를 일소할 필요가 있다. 다만 편파.보복사정이라는 시비를 피하려면
특별검사제 도입이 필요하며 정치권사정이 일과성이 안되려면 부패방지법을
제정하는 등의 제도적인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또한 부정부패의 유인을 원천적으로 없애려면 비대한 관료조직 및 권한을
축소하고 행정정보를 신속.과감하게 공개해야 할 것이다. 지속적이고 공정한
개혁을 위해서도 여야는 하루빨리 정기국회에서 머리를 맞대고 이같은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하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