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구조 조정-M&A(기업인수합병)와 관련해서"를 주제로 한 이 강연에
1백10여명의 상법학자들이 참석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강연 말미에 법학 교육 법제도 개혁의 하나로 미국식 로 스쿨 제도 등 국내
법과대학 개편안을 놓고 토론도 벌어졌다.
법은 그 나라의 기초 법질서는 물론 경제 질서, 나아가 가치관까지도
결정하는 중요한 기본 제도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법 전공은 커녕 대학 4년도 끝내지 않은 채 누구나
사법시험을 칠 수 있고, 한 번 붙기만 하면 팔자를 고치는 것으로 인식돼
있다.
때문에 21세기를 앞두고 온 세상이 다 바뀌어도 여전히 "과거 시험"을
보려고 똑똑하다는 젊은이들이 구름처럼 몰려 들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국가 인력의 낭비라고 모두들 개탄하고 있다.
작년 11월 발생한 금융위기이후 국제통화기금(IMF)과 미국의 요구에 따라
기업 장부의 투명성 제고를 위해 회계-감사업무 시장을 외국 공인회계 법인에
내주는 등 일대 변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
금감위는 최근 은행 운영 개선책의 하나로 대출 업무와 대출 심사에
대해서는 전문 외국인을 임직원으로 선임해야 한다고 특별 지시까지 내려야만
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구동성으로 어떻게 하면 미국 투자가들을 유치할 수
있느냐, 또는 외국 선진 경영기법을 받아들일 수 있느냐고 야단이다.
이와 같이 환란으로 시작된 이번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은행 기업 국가
모두가 비상이다.
학계 또한 경제 회생을 위한 방향을 모색하느라 온 정신을 쏟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변호사들은 아직도 민-형사 사건을 갖고 서초동 법원
주위만을 맴돌고 있다.
작년 기아사태때 보여준대로 대형 로펌과 개별 개업 변호사들 사이에는
아직도 밥그릇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새로운 법 질서 또는 변호사상에 대한 요구는 외면되고 있다.
세계가 하나의 생활권이 되어 모두 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오늘날 국내
변호사들이 국제 경쟁력을 갖추려면 지금의 사법고시 제도를 고치는것 등의
개혁이 시급하다.
미국의 국제 변호사들은 민사-형사 사건 때문에 법정 출입을 주 업무로 하던
때는 한참 전에 지나갔다.
그들은 지난해 말 한국을 위해 "달러 끌어들이기"에 나섰던 것 처럼 이제는
세계를 상대로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파는 "해결사"노릇을 하고 있다.
중국은 지난 80년대 시장경제 제도를 도입, 초고속 경제 성장을 시작할 때
법률-회계시장 개방부터 먼저 했다.
중국은 당시 서양식 변호사 제도는 물론 회계사 제도도 없었다.
자본주의의 첨병인 미국 등 외국 변호사와 회계사들에게 법률과 회계 시장을
개방하고도 온전하게 살아남을 수 있겠느냐는 우려의 소리가 높았다.
그러나 사회 일각의 기우와는 정반대로 오히려 미국 변호사와 회계사들은
자기 자본력이 없던 중국의 경제성장에 견인차 역할을 해냈다.
한때 홍콩에 상주하며 중국 비즈니스를 추진했던 외국 회계사가 5천명,
변호사가 5백명을 넘기까지 했다.
그 결과 중국 기업은 한국 기업보다 더 많이 월가에 진출해 있다.
일본은 벌써 10여년 전에 외국 변호사들에게 국제법률 업무 시장을
개방했지만 아직까지 일본의 주권이 유린당했다는 불평은 들려오지 않고
있다.
한국이 외국 로펌에 국내 시장을 개방한다면 외국 변호사들은 그들이 갖고
있는 첨단 지식과 정보를 투입하는 것은 물론, 자기네들이 돈을 더 벌기
위해서라도 귀한 고객들을 한국 시장에 끌어 들이려고 스스로 노력할 것이다.
외국 변호사들이 국내에서 할 수 있는 분야는 외국법에 관련되는 문제,
즉 외국인 투자 분야가 주종을 이룬다.
국내 법률시장 개방 반대론자들의 논리처럼 한국 고유의 가족법 형사법
민법 등 국내법 분야까지 개방하는 것은 아니다.
외국 자본과 외국 기업을 유치해야 한다는 지상 명제의 실현을 위해 외국
회계법인까지 불러들여야 했다면, 이제는 그 회계법인과 "바늘과 실"사이인
외국 변호사들까지 끌어들여야 할 때가 아닌가.
법 질서의 선진화-국제화 없이는 경제 회생이 있을 수 없다.
어차피 이번 경제 위기를 맞아 법 질서의 기틀을 새로 다시 짜야 한다.
그 새로운 시작을 위해서는 변호사 시장부터 개방해 보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