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과 가을에는, 들고 나고 이사를 가는 집이 많다.

집안에 어른이 계신다면 대개 날짜를 가려서 그리고 방위를 잘 택해서
이사를 가라는 주의를 듣기 마련이다.

금기(taboo)는 삼가고 피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종교적으로 혹은 관습적으로 어떤 대상에 대한 접촉이나 언급이
금지되는 것을 말한다.

재앙이나 사건에 대해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이 주술이라면, 약간은
소극적인 개념을 가진 것이 금기이다.

금기는 속성상 이 세상의 모든 사물과 연관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먹지 마라, 손대지 마라, 뒤돌아보지 마라 등...

한 마을에서 몇 대를 이어오며 붙박이로 농사만을 짓던 과거에는 이사가는
것이 엄청나게 큰일이었다.

때문에 택일과 방위에 대하여 집요하리만치 민감했던 게 사실이다.

오늘날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3년사이에 여덟 번을 옮길 정도로 이사를 자주가는 집도 등장했다.

세계화(globalization) 개념으로 본다면, 우리의 사상이나 정신세계의
광역화뿐 아니라 이제는 직업을 구하고 생활터전으로 삼는 지역도 지구촌
아니 우주촌의 개념으로 확대되어야 할 시점이다.

과연 손 없는날 이 더 이상의 효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개념은 날에 따라 거기에 해당하는 방위가 부정하기 때문에 피한다는
것이다.

손은 날수를 따라 동서남북 등 네방위를 돌아다니며 사람의 활동을
방해한다는 귀신.

민간에서는 음력으로 따져 끝수가 1,2일은 동쪽에, 3,4일은 서쪽에, 5,6일은
남쪽에, 그리고 7,8일에는 북쪽이 부정하기 때문에 손이 있다고 파악한다.

나머지 9,10일은 손 없는 날로 인가받는다.

이삿짐 센터가 호황을 맞는 날이다.

몇번 이사를 가본 사람이라면 손 없는 날에 이사가기 위하여 상당한 수고를
미리 해야한다는 걸 알 것이다.

전래의 믿음은 그 자체로 간주하면 된다.

굳이 미신이니 하여 멸시의 눈길을 보낸다는 것은 우리 스스로를 욕되게
하는 일이다.

성철재 <충남대 언어학과교수/역학연구가 cjseong@hanbat.chungnam.ac.kr>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