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사태를 계기로 국제통화기금(IMF)이 또다시 국제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아시아 외환대란 당시 제대로 된 처방전을 내놓아 사태를 신속히
수습했더라면 외환위기가 이렇게까지 전세계적인 재앙으로는 번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이다.

IMF가 아시아위기 때 각국의 경제현실을 무시한 채 일률적인
고금리.초긴축을 강요해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켰고 아시아의 위기가
장기화되면서 다른 나라들까지 멍이 들고 있다는 지적이다.

원자재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러시아 남미 캐나다등이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도 아시아의 수요감소 때문이다.

홍콩등에서 투기세력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것 역시 IMF의 소극적인
태도로 자신감을 얻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IMF는 러시아에서도 비슷한 수순을 밟고 있다.

아시아위기 때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에 요구한 개혁프로그램은 하나같이
급진적이며 원론적인 것들 뿐이다.

재정 건전화, 부실기업 정리, 금융시장 자유화 등이 대표적인 주문이다.

이같은 개혁프로그램중 단기간에 이뤄질 수 있는 사안은 하나도 없다.

재정건전화를 위해선 당장 증세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이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MF는 러시아가 경제개혁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경우
자금지원을 중단하겠다는 "협박"만 계속해댔다.

이는 즉각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쳐 외국인 투자자들의 러시아 철수를
부채질했으며 결국 사태를 걷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몰아가고 말았다.

이와함께 IMF가 통화의 평가절하를 "만병통치약"으로 확신하고 있는 것도
큰 오산이라는 지적이다.

윌리엄 윌비 오펜하이머펀드 이사는 "통화 평가절하가 금융위기를
해소시킬 것이라며 이를 강요하는 IMF식 처방이 오히려 국제금융을 위기로
몰아가고 있다"고 IMF를 강하게 비난했다.

그는 "러시아가 IMF와 사전협의를 거쳐 루블화의 평가절하를 단행했지만
이것이 바로 재앙의 씨앗이었다"며 "루블화가 평가절하되자 외국자금이
한꺼번에 러시아에서 빠져나왔고 일반인들까지 달러매입 대열에 합류해
상황을 걷잡을 수 없이 만들어 버렸다"고 주장했다.

국제금융전문가들은 따라서 IMF가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 러시아에 대한
신뢰감을 심어줘 국제금융계의 동요를 진정시키는 일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데이비드 폴커츠 란다우 전 IMF 수석이코노미스트는 "IMF는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러시아에 대한 금융지원을 여러차례 지연시켰다"며 "주기로
약속한 것이라면 빨리 지원해 러시아에 대한 국제금융계의 신뢰를 회복시키는
것이 사태해결의 첩경"이라고 강조했다.

줄듯 말듯 미적거리다보면 사태는 이미 손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는
얘기다.

지금까지 폴 크루그먼, 제프리 삭스, 스티브 행크 교수등이 줄곧 주장해온
논리와 같은 맥락이다.

결국 IMF가 아시아외환위기때 지은 원죄의 굴레에서 벗어나 세계금융시장을
위기로부터 구출하기 위해선 획일화된 처방전만 고집하지 말고 각국의
경제사정을 반영한 좀더 현실적인 해결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것이다.

< 김수찬 기자 ksc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