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의학의 신비로 일컬어지는 침술.

약을 투여하거나 외과적 수술을 거치지않고 인체의 경락을 자극하는
것만으로 통증을 멈추게 하거나 병을 낫게 하는 기적의 치료법이다.

이같은 효능에 힘입어 침술은 고대로부터 한국을 비롯한 중국등지에선
의술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러면 이 침술은 어떤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을까.

이에 대한 궁금증이 풀렸다.

침술이 다른 어떤 치료법보다 확실한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다는게 처음
밝혀진 것이다.

특히 침술의 과학적인 규명은 재미 한국인 과학자에 의해 이뤄졌다.

캘리포니아대 물리학교수인 조장희(62) 박사가 그 주인공.

조박사는 한국과학기술원(KAIST)교수로 재직하던 지난 80년대 중반 최첨단
의료기기인 핵자기공명단층촬영장치를 개발한 물리학계의 세계적인 권위자다.

미국의 과학전문지 디스커버리는 9월호에서 조박사의 "침술 이론"특집까지
마련, 내용을 자세히 소개했다.

조박사가 침술이 인체에 어떤 경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분석하기 위해
시도한 실험방법은 이랬다.

먼저 눈에 빛을 쪼여 자극을 준 뒤 뇌에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를
관찰했다.

뇌의 활성부위는 특수기능을 가진 자기공명촬영장치(fMRI)를 이용해
촬영했다.

뇌가 활성을 띠는 것은 혈액안의 산소량이 늘어났다는 얘기다.

다음으로 침술에서 눈과 관련돼 있는 것으로 알려진 새끼 발가락쪽 발등위
경락에 침을 놓은 후 마찬가지로 뇌의 활성부위를 촬영했다.

조박사는 두가지 경우를 비교한 결과 뇌의 활성범위나 그 강도가 아주
비슷한 것을 발견했다.

불빛으로 자극을 줬을 때와 발등에 침을 놓았을 때 모두 뇌의 시각피질
(visual cortex, 시각 기능을 관장하는 곳) 색깔이 똑같이 변한 것이다.

조박사는 이 실험을 진행하면서 플러시보효과(placebo effect, 가짜약을
투여해도 심리변화로 실제 환자의 상태가 좋아지는 효과)의 가능성을 배제
하기 위해 발등의 다른 부위에 침을 놓았다.

그리고 반응을 살폈으나 시각피질에 전혀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또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상황을 바꿔가며 똑같은 실험절차를 반복했지만
결과는 같게 나왔다.

조박사는 이번 실험을 통해 침술이 질병을 치료하는 효과가 뇌과학적으로
입증됐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폐가 좋지않을 경우 여기에 관계된 신체부위에 침을 놓으면 폐 주위
신경을 관장하는 뇌의 피질이 활성화(산소공급이 증가)된다.

피질이 활성화되면 자연히 폐 주위의 신경이 자극돼 그 부위에도 산소공급이
활발해진다.

이같은 메커니즘으로 폐의 새로운 세포생성이 촉진돼 결과적으로 질병을
치료한다는 것이다.

이같은 연구결과는 그동안 전혀 과학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침술의 효과를
부정해온 구미 학자들에게 커다란 반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특히 조박사가 밝혀낸 내용은 침술이 엔돌핀발생을 유발해 통증억제효과를
갖는다거나 뇌와는 직접 관계되지 않고 질병을 치료한다는 기존 주장까지
뒤집은 것이어서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그동안 중국 한의학계에서는 신체의 특정부위와 뇌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침을 놓으면 그 반응이 뇌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질병부위에 작용한다고
믿어왔다.

특히 침술이 통증완화에만 효과적이라는 "엔돌핀이론"은 서양 의학계에서
널리 받아들여져 왔다.

신경과학자인 캐나다 토론토대학 브루스 포메란츠교수가 주장한 이 이론은
침술이 피하근육을 자극해 척수를 거쳐 대뇌나 중뇌, 뇌하수체 등으로
전달된다는 내용이다.

이 자극이 엔돌핀을 유발시켜 질병부위의 고통을 억제한다는 것이다.

결국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고통만을 줄여 준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이 이론은 가령 중국에서 시술되고 있는 침술마취, 뇌졸중치료 등을
비롯 임신촉진 등의 효과는 전혀 설명할 수 없는 한계가 있었다.

조박사는 이번 실험결과가 "신경과학에 새로운 장을 여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침술의 자극이 뇌에 정확히 어떤 경로로 전달되며 해당 피질을
어떻게 활성화시키는 지에 대해서는 더 연구해야 할 과제"라고 덧붙였다.

한편 디스커버리는 물리학자인 조박사가 침술을 연구하게 된 계기를
흥미롭게 적고 있다.

현대과학을 신봉하는 조박사가 침술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93년.

당시 서울에 들러 근교 산을 오르다 발목이 다치는 사고를 당했다.

미국에 돌아가 치료를 받던중 주위로부터 "침술을 사용해보는 것이 어떠냐"
는 권유를 받았다.

과학자로서 평소 동양의학을 믿지 않았을 뿐더러 동양의학에 의지하는 것은
일종의 "수치"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단순한 "흥미"로 한번 시도해봤다.

그러나 놀랍게도 침을 맞은 뒤 10분만에 고통이 사라졌다.

조박사는 그때부터 침술 또한 과학적인 작용에 의해 효과를 보일 것이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침술원리에 대한 연구에 몰두했다는 것이다.

< 정종태 기자 jtchung@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3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