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정부가 해외에서 발행한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를 비롯해
산업은행이나 민간기업들이 발행한 각종 채권값이 지난 주말 사상 최저로
폭락해 신규 외화자금 조달이 사실상 중단됐다. 한국 채권값이 폭락한
까닭은 아시아각국의 통화위기에 이어 러시아의 모라토리움 선언까지 겹쳐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이 가중됐기 때문이지만 이밖에 한국정부의 현대자동차
파업사태 처리과정을 지켜본 외국투자자들의 실망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문제는 지금의 국제금융불안이 시작에 불과하며 자칫 전세계적인 신용경색
및 공황국면으로 이어질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는 점이다. 만일 이런 상황이
오면 외자조달금리의 폭등은 물론 아예 신규 외자조달이 불가능해져 제2의
외환위기를 피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구조조정을 좀더 과감하게
단행하는 한편 수출증대 외자유치 등에 총력을 기울려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외평채금리는 미국 재무부증권(TB)금리에 일정한 금리를 덧붙여 결정하는데
지난 21일 10년만기 외평채의 가산금리가 하룻만에 1.5%포인트나 뛰어
7.8%까지 치솟았다. 지난 4월초 40억달러어치의 외평채를 발행할 때 3.55%의
가산금리를 붙였던 것과 비교하면 가산금리가 2배이상 오른 셈이다. 또한
지난해말 외환위기가 한창일때 금리가 너무 높아 발행을 포기했던 당시
6%였던 산업금융채권(산금채)의 가산금리가 지금 8.25%까지 뛰었으니
국제금융시장의 동요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수 있다.

물론 한국채권의 유통수익률만 폭등한 것은 아니다. 브라질채권은
가산금리가 4.13%에서 7.28%로 올랐고 인도네시아의 국채는 가산금리가
지난 21일 연 14.79%에서 24일에는 연 17.96%로 무려 3.17% 포인트나
급등했다. 모라토리움을 선언한 러시아의 국채금리가 폭등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처럼 전세계적으로 이머징마켓(신흥시장)의 채권을 투매하고
빠져나온 자금이 미국의 채권시장으로만 몰려들고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는 자본유출에 따른 경기침체를
피할 수 없게 되는 반면 미국경제는 거품발생을 걱정하게 된다. 이바람에
지난 21일에는 장기금리의 기준인 30년만기 TB금리가 5.43%로 떨어져
대표적인 단기금리인 연방기금금리(FFR) 5.5%를 밑도는 장단기금리 역전현상
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미국의 뒷마당이라고 불릴 정도로 관계가 밀접한
중남미경제가 침체에 빠지면 이지역에 거액의 대출을 해준 미국은행들이
부실채권을 떠안게 되고 미국주가도 폭락하기 쉽다.

아시아발 통화위기가 러시아를 거쳐 중남미와 동유럽을 뒤흔들고
서유럽까지 위협하고 있는데도 이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협조 및 정치적
리더쉽이 발휘되지 못하는 위기상황을 직시하고 정책당국은 비상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하겠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