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구조조정이 속도를 더해가고 있다.

정부의 압박이 워낙 강한데다 외부환경 또한 구조조정을 요구하고있어
대부분의 기업들은 연내 구조조정을 일단락짓는다는 목표 아래 사업분리,
계열사 매각, 흡수합병, 청산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고 있다.

두산 한솔같은 그룹은 이미 구조조정을 거의 마무리했다.

구조조정이 한발한발 진전되면서 재계의 판도에도 커다란 변화가 오고 있다.

한일 효성 강원산업 등의 경우처럼 그룹의 간판을 내리려하는 곳이 있는가
하면 고합 동아건설 그룹 등처럼 대기업 그룹이 한두개 단일기업으로
재편되는 과정에 들어선 곳이 있다.

또 대상처럼 핵심사업을 매각, 업종을 단순화한 기업도 있다.

특히 5대 그룹을 중심으로 진행되고있는 빅딜(대규모 사업교환)이
이루어지면 재계판도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기업구조조정은 전경련과 5대 기업이 중심이 된 태스크포스가 만들어지면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김우중 전경련회장대행은 최근 한국경제학회 국제학술대회에서
"태스크포스가 늦어도 9월10일까지는 국민들을 실망시키지 않을 구조조정안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연내에 2~3차례 걸쳐 기반산업전반에 대해 구조조정을 매듭지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의 의지가 강하고 기업의 대응이 신속해 조만간 기업구조개혁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지금 추진되고 있는 것과 같은 방식이 과연
바람직한 것이냐하는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속도를 강조하다보니 구조조정이 졸속으로 흐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5대 기업이 참여해 추진하고 있는 재계 자율구조조정에 다른기업이
반발하는데서 알 수있듯이 일부에서는 부작용이 이미 노출되고 있다.

기업들은 정부가 여론을 의식, 시장원리를 무시하고 기업들을 몰아붙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정부는 공공 금융 노사 부문 등에 비해 기업 개혁의 속도가 더디다는
비판을 심심찮게 제기해왔다.

노사문제가 악화될 쯤에는 더 그랬다.

근로자들만 고통분담에 참여하고 기업은 변하지 않는다는 여론을 의식하는
듯했다.

특히 하반기 들어 정부는 더 강경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이달들어서는 대통령까지 나섰다.

지난 3일 김대중 대통령은 대기업의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하다고 질책했다.

특히 핵심사업 위주의 구조조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대해
불만을 표시했다.

이후 경제각료들이 잇달아 같은 톤의 목소리를 냈다.

급기야 금융감독위원회는 5대 기업에도 "채찍"을 가하기 시작했다.

금감위는 지난 7일 현대 삼성 대우 LG SK 등에 다음달말까지 구조조정방안을
포함한 새 재무구조 개선계획을 주채권은행에 제출토록 지시했다.

이를 토대로 오는 12월15일까지 최종적인 구조조정 방안을 확정하겠다고
밝혔다.

산업자원부는 10대 기반산업의 공급과잉을 지적하며 이를 중심으로
기업개혁을 해나가겠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빨리 알아서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메스를 대겠다"는 경고에 다름
아니었다.

재계가 이달들어 바삐 움직이는 것도 이 경고의 강도를 피부로 느끼고
있어서다.

하지만 기업구조조정은 그 성격상 쉽지도 않을 뿐더러 단기간내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도 어렵다.

재계가 자율 구조조정안을 내놓는 것 자체가 힘들다는 것이다.

하기 싫어서가 아니라 본질적으로 합의가 어렵게 돼있다.

우선 돈이 걸려있어서다.

애써 키워온 사업을 교환하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다.

정부와 기업들의 시각차도 문제다.

정부는 경기가 최악인 현 상태에서 보고 있고 기업들은 미래를 보고 있다.

정부는 지금 장사가 안되는 사업에는 칼을 대겠다지만 기업들은 1, 2년내
해당 업종의 경기가 좋아질 수 있다며 버티고 있다.

산업자원부 관계자도 "공급과잉인 것은 분명하지만 그래서 어떻게
교통정리가 돼야 한다는 대안을 마련하기 힘들다"고 말할 정도다.

뭔가 진행되고는 있지만 실제로 획기적인 빅딜안이 만들어지기가 어렵게
돼있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현실이 이런대도 정부가 국민과 외국인의 "기대치"를 지나치게
높여놓았다는 점이다.

재계가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안을 내놓더라도 "기대이하"라는 평가가 나오게
돼있다는 얘기다.

국민 여론은 기업들이 개혁에 소극적이라고 욕하고 외국인들도 한국 재계가
개혁에 부정적이라는 입장을 밝힐 가능성이 높다.

실제와 상관없이 정부가 그동안 분위기를 만들어놓은 것이다.

사실 기업들이 올들어 벌인 구조조정 작업은 그렇게 과소평가할 것은
아니다.

이사회 중심 경영 등 경영투명성 제고나 총수들의 책임경영강화 등
부분에서는 일정한 성과도 거뒀다.

상호지급보증도 눈에 띄게 줄었다.

최악의 자금난 속에서도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자구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미 지난달말 6~64대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1차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기업 선정이 끝난 상태다.

여기다 5대 기업의 구조조정이 구체화되면 기업개혁도 어느 정도 눈에 띄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어쨌든 정부와 재계의 합의로 기업 구조조정안은 조만간 나오게 돼있다.

한두가지 빅딜이 이를 통해 이뤄지면 연쇄적으로 재계 구조조정이 가시화될
것으로도 기대된다.

그러나 기업 구조조정이 위기극복과 장기적인 성장기반 구축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서는 기업에 자율폭을 넓혀주는 배려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이 존재이유인 기업이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 권영설 기자 yskw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