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통화기금 (IMF)과 세계은행(IBRD)의 유용성에 대한 논의가 재연되고
있다.

아시아위기의 악화와 더불어 일본,중국 심지어 러시아까지 홍역을 치르면서
이들 국제금융기관의 정책방향과 관리능력에 대한 회의론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헤리티지재단의 에드윈 풀너 이사장은 중병을 앓고 있는 아시아경제의
의사로 묘사되온 IMF와 IBRD가 채택해온 정책의 방향과 행보가 적절한
것이었는가에 의문을 제기해온 사람으로 유명하다.

미국의 IMF에 대한 추가출자에 반대해 온 것으로도 주목을 받았다.

풀너 이사장을 양봉진 워싱턴특파원이 만나 아시아 위기와 세계경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 특히 IMF 및 IBRD에 대한 헤리티지재단의 평가 등을
들어 보았다.

풀너 이사장은 조만간 한국에서 김대중대통령과의 면담이 계획돼 있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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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시아 위기가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이로인해 그동안 낙관적이었던 분석가들조차도 비관적인 자세로 돌아서고
있다.

어떻게 보는가.

<> 풀너 이사장 =아시아가 예상보다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월 스트리트가 이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엔화하락 속도도 예상 밖으로 빨라지고 있다.

시장만큼 현실을 잘 반영하는 것이 없다는 점에서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까지 미국이 받은 아시아위기의 영향은 미미하다는 것이 지배적인
분위기였으나 여러 분야에서 그 파장이 현실로 느껴지고 있다.

항공, 컴퓨터 등이 특히 심하다.

홍수 등 자연재해까지 겹쳐 아시아인들의 극복의지가 시험대 위에 올려져
있다.

세계는 하나로 묶여져가고 있다.

다른 나라들이 어려운데 미국 혼자 호세월을 구가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아시아를 걱정하면서 헤리티지 재단이 미국 행정부의 IMF에 대한 1백80억
달러 추가출자에 반대한 이유는 무엇인가.

<> 풀너 이사장 =IMF가 자금을 많이 확보하게 되면 한국 등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에 지원할 수 있는 여력이 생기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단순한 시각에서 보면 우리의 입장이 상호모순처럼 느껴질지 모른다.

하지만 IMF에 대한 추가출자문제가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1996년으로서
아시아위기라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않던 때였다.

따라서 추가출자 문제와 아시아위기는 같이 묶여있는 사안이 아니다.

아시아위기 때문에 추가출자문제가 거론된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전혀
사실과 다르다.

헤리티지 재단이 추가출자에 대해 반대한 것은 IMF가 국제금융질서를 유지
하고 발전시키는데 제몫을 다하고 있는가에 대해 회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의회의 IMF에 대한 출자승인 여부와 한국 인도네시아 태국 등에 대한
지원여부를 동일시하는 것은 의도적 왜곡이다.

- IMF가 인도네시아 필리핀 한국 태국 등에 지원키로 한 금액이 3백60억달러
에 달해 많은 자금이 빠져 나간 것은 사실 아닌가.

<> 풀너 이사장 =IMF의 주장이 바로 그것이다.

아시아위기로 거액의 자금이 빠져 나갔으니 채워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그러나 IMF의 자금여력은 추가출자 없이도 충분하다는 것이 우리의 평가다.

예를 들어 1997년 4월30일을 기준으로 볼때 IMF의 유동자금은 8백60억달러
였다.

아시아 국가로 3백60억달러가 빠져 나가더라도 5백억달러가 남는다.

자금이 계속 빠져 나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채무국의 원금상환등 유입될 자금이 2백80억달러에 이른다는 점을 감안해
볼 때 실제로는 2천년까지 7백50억달러의 유동자금이 확보될 수 있다.

이는 아시아위기 같은 규모의 위기를 두번 겪어도 버텨낼 수 있을 정도의
자금규모라는 것이 우리의 분석이다.

- 최근 미국의 움직임을 보면 고립주의 내지는 신고립주의자(Neo
Isolationist)로 비쳐지기도 하는데.

<> 풀너 이사장 =지구촌은 하나의 공동체라는 것이 우리의 지론이다.

누구도 혼자서는 살 수 없다.

모든 국가의 개방을 강조하는 것은 이같은 맥락에서다.

IMF를 비난하면 고립주의 내지는 신고립주의를 신봉하는 것처럼 등식화돼
있는 것은 인식부족의 결과다.

죠지 슐츠 전 국무장관, 윌리엄 사이먼 전재무장관, 월터 리스튼 전
시티코프 회장 등은 신문기고를 통해 IMF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벨경제학자 밀튼 프리드만과 잭 켐프 전 부통령후보 또한 IMF에 대한
추가출자를 반대했다.

그러나 이들 어느 누구도 미국 혼자서 살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그 정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이들이다.

이들은 IMF가 시장질서를 교란함으로써 세계의 복지증진 차원에서 장단기적
으로 해악을 끼친 경우가 더 많다고 믿고 있는 사람들이다.

- 시장질서를 교란했다는 점을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 달라.

<> 풀너 이사장 =시장의 기능중 중요한 것은 자기수정(Self Correction)
기능이다.

한 국가의 정책이 잘못돼어 있으면 이는 국제시장에 반영되고 또 결국
교정된다.

파산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IMF는 정부나 기업의 정책과오를 구제금융으로 감싸고 돌면서 파산
선고라는 시장의 중요기능을 마비시켜 또 다른 정책과오를 유발하고 있다.

이른바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조장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에서도 실패한 기업은 시장기능에 따라 빨리 퇴출돼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구조조정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지구촌이라는 테두리에서도 똑같이 적용되는 논리다.

IMF라는 든든한 방패(shield)가 있다는 인식이 고정화되어 있는 한 무분별
하고 무모한 정책결정이 양산될 수 있다.

IMF가 하는 일은 국가 또는 기업의 투자리스크를 전체 사회가 떠 맡게 하는
(socializing)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 그렇다면 IMF가 아시아에 대해 취했어야 하는 조치는 무엇인가.

<> 풀너 이사장 =아시아가 위기에 처한 것은 돈 때문이라기 보다는 아시아
가 안고 있는 체질적 문제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따라서 성급한 구제금융으로 아시아인들에게 잘못된 인식을 심어주기
보다는 진정한 의미의 개혁을 먼저 요구했어야 했다.

IMF가 모든 문제를 돈으로 해결하려 든 것이야 말로 결정적 과오라고 할 수
있다.

- 이론적으로는 설득력있는 설명이지만 경제는 현실이고 국가에 대한 파산
선고는 해당국가 국민의 삶과 죽음의 문제 아닌가.

<> 풀너 이사장 =그 지적이야 말로 IMF가 즐겨 쓰는 주장이다.

IMF의 자금이 잘 쓰여져 해당국 국민복지증진에 기여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IMF의 돈은 우선 빚 갚는데 쓰이고 만다.

심한 경우 IMF가 돈을 빌려주면서 IMF 돈부터 갚으라는 경우도 있다.

특히 IMF의 구제금융을 받은 국가의 복지수준은 구제금융을 받기 전과
달라진 것이 없거나 더 열악해졌다는 것이 관련자료의 분석 결과다.

65년부터 95년까지 IMF의 돈을 가져다 쓴 85개국중 48개국의 복지수준은
나아진게 없다.

이중 32개국은 더 가난해졌다.

페루의 경우 1971년과 1977년 사이 17번의 자금지원이 있었지만 결과는
페루의 외채만 늘려 놓았을 뿐이다.

- 다른 급박한 현실들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나.

우선 가시권에 들어와 있는 현안으로 엔화가 있다.

계속 떨어지고 있다.

이는 중국 위안화에도 절하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러시아의 외채지불유예 사태까지 겹쳤다.

미국은 클린턴의 중국방문전 시장에 개입해 엔화를 방어했다.

러시아 사태가 악화되면 다시 개입할 것인가.

<> 풀너 이사장 =엔화가 더 떨어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렇다고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더욱 바람직하지 않다.

클린턴이 중국을 방문하기전 20억달러를 풀어 엔화방어에 나섰지만 그것은
정치적 편의성(Political Expediency)에 불과했다.

조 단위의 시장에서 20억달러라는 것은 바다에 양동이 물을 붓는 것에
불과하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클린턴 행정부의 일관성 없는 자세다.

시장개입은 절대 없다고 공언했다가 이를 번복하고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스스로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행위다.

클린턴 행정부의 일관성없는 정책노선은 국제적 신뢰구조마저 무너뜨릴
수 있다.

- 중국의 위안화 절하 가능성은.

<> 풀너 이사장 =어려운 문제다.

위기감은 월 스트리트에서부터 읽을 수 있다.

주가가 곡예를 계속하고 있다.

엔화추락의 끝이 어디인지 몰라 모두들 불안해 하고 있다.

엔화에 자극받아 중국 위안화까지 덩달아 폭락한다면 아시아 위기는 세계
경제를 먹구름 속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파괴력을 낼 것이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러시아의 대외채무 지급유예 사태까지 터졌다.

르윈스키 사건 등으로 방심하는 사이에 미국은 물론 지구촌 전체가 공황에
휩싸이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를 낳고 있다.

그러나 중국이 국내문제나 대외문제를 위안화절하로 해결하려 드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결정이 될 것이다.

왜냐하면 위안화의 절하는 다른 나라들의 평가절하로 이어질 것이고 결국
위안화 절하는 아무 소득없는 선택이었다는 것을 곧 알게 될 것이기 때문
이다.

- 일본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 풀너 이사장 =한마디로 일본은 21세기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
없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실망스럽다.

현재의 대장성 체제를 구축한 장본인인 미야자와를 개혁의 주체로 내세우는
것만 봐도 일본 정치관료사회의 경직성을 읽을 수 있다.

- 건국 50주년을 맞은 한국을 방문해 김대중 대통령과 회담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무슨 조언을 할 예정인가.

<> 풀너 이사장 =김대통령은 혼자 뛴다는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

이는 본인을 위해서나 국가발전을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은 중요한 결정만 내리고 권한을 아래로 대폭 이양한채 뒤로 물러나
앉아야 한다.

권한이양이야말로 아시아 지도부가 빨리 서둘러야 할 개혁과제다.

공산당이 실패한 것은 당 지도부가 시시콜콜 모든 것을 챙기는 시스템을
유지했기 때문이다.

< 만난사람 = 양봉진 워싱턴특파원 bjnyang@aol.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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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약력 ]

<> 시카고 태생
<> 덴버 Regis대 졸업
<> 런던 School of Economics 펜실베니아대 MBA
<> 영국 에딘버러대 Ph.D. CSIS 조사연구위원
<> 스텐포드대 후버연구소 연구위원
<> 멜빈 레어드 전 국방장관 고문
<> 헤리티지재단 이사장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2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