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한국창조 21] (좌담회) 한반도 평화정착/남북한 경제교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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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한반도엔 "냉전"의 틀을 뛰어넘는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있다.
정경분리원칙에 기초한 새정부의 "햇볕정책"은 남북간 평화공전의 가능성을
한층 높이고 있으며 북한의 체제정비로 남북 정상회담의 가능성도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이에 한국경제신문사는 통일경제연구협회와 공동으로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한간 경제교류"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본사 17층 대회의실에서 가졌다.
김기환 통일경제연구협회이사장의 사회로 열린 좌담회에는 김경원 사회과학
원장, 김석우 전 통일원차관,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장 등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남북한간 신뢰를 토대로 교류와 접촉증대를 꾀하는 것이 통일에
이르는 실질적인 길"이라며 "민족 내부역량을 결집해 주변정세를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정치적 리더십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좌담회 내용을 요약한다.
< 정리 = 이의철 기자 eclee@ >
-----------------------------------------------------------------------
<> 김기환 통일경제연구협회 이사장 =최근의 남북관계에선 몇가지 주목할
만한 변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우선 새정부의 대북정책기조는 그간 북한의 몇몇 도발사건에도 불구하고
"햇볕정책"으로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또 "정경분리"에 근거한 경협활성화 조치로 남북간 경협무드가 어느 때보다
무르익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일단 "햇볕정책"은 남북관계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 김석우 전통일원차관 =장기적으론 "햇볕정책"이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을
줄 것으로 봅니다.
"햇볕정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안보와 화해의 병행추진이거든요.
북한에선 이를 또다른 "흡수통일론"이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햇볕정책은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는 바탕위에서 성립합니다.
일각에서 비판하듯 일방적 시혜책은 분명 아닙니다.
현재의 남북한 대결구도를 평화공존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유일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지요.
외국인들의 시각도 긍정적입니다.
왜냐하면 북한 붕괴를 전제로 한 대북정책은 반드시 긴장관계를 유발하게
되는 데 주변국 입장에선 이것이 별로 달갑지 않거든요.
<>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장 =남북한 경제협력의 관점에서 보면 "정경분리"
원칙이 더 피부에 와닿습니다.
특히 경협와중에서 무장간첩침투 같은 돌출사건이 발생했을 때의 대처방식이
문제가 된다고 봅니다.
정부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은 분명합니다.
잠수정사건이후에도 현대측의 "소떼 2차 북송"은 연기됐지만 금강산 관광을
위한 실무협의는 계속 진행중이거든요.
<> 김경원 사회과학원장= 잠수정이나 무장간첩침투사건을 이해하려면 북한이
처한 입장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은 내부긴장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지속적으로 선전해야
하는 체제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외부위협이 점차 없어지는 상황이거든요.
가장 큰 위협요소였던 미국과 관계개선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미국은 앞으로 북한의 잠재적인 우방으로 부상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남한만이 북의 유일한 위협세력이 되는데 북한 입장에서 보면
남측과 경협의 필요성도 있지만 긴장관계 또한 필수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북한은 남한정부와 관계개선을 하지 않고서도 민간기업과 경제
협력을 할 수 있는 겁니다.
<> 이 소장 =그렇습니다.
경협을 놓고 얘기하자면 민간기업에 최대의 자율성을 주되 책임도 기업이
지도록 하는 정책방향이 돼야할 것 같습니다.
물론 북한과는 특수관계인 점이 감안돼야 하겠지요.
기본적으로 경협의 주체가 민간기업일 경우 민간기업에 자율성을 주는
정부의 정책방향은 옳다고 봅니다.
경협과정에서 기업이 의사결정을 바꾸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정치적
논리에 의해 경협이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확실한 정경분리정책을 고수하는 것이 정책의 일관성면에서도 바람직한
것이거든요.
<> 김 원장 =경협이 갖고 있는 딜레마중 하나는 경협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북한이 이니셔티브를 갖게 된다는 점입니다.
남한 기업들은 북한이라는 파트너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경협프로그램을
제시할 테고, 이는 곧 뷔페식 경협메뉴가 되는 겁니다.
북한 입장에선 입맛에 맞는 것만 취사선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금강산 관광문제만 보더라도 관광객들은 가능하면 북한측 민간인들과
만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반면 북한은 남쪽 관광객이 방북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각종 장치들을 디자인할 것입니다.
만일 금강산 관광프로그램이 체제에 위협이 안되는 수준이라면 북한이
용인하겠지만 조금이라도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북한은 즉시 이를
중단시키려고 할 겁니다.
<> 이 소장 =적절한 비유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남한 기업입장에서 보면 현 시점에서 뷔페에 내놓을 음식이 별로
없어요.
구조조정이다 정리해고다 해서 제 앞가림하기도 벅차거든요.
IMF(국제통화기금)지원을 받기 이전이라면 무리해서라도 많은 음식을
내놓으려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입장이 안됩니다.
IMF관리체제에 들어선 이후 기업들이 대북경협을 추진하는 데 코스트가
훨씬 높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 김 이사장 =미국의 동아시아정책과 연계해 남북간 경협을 살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미국으로서도 냉전시대 세계경찰로서의 정치적 군사적 역할보다는 경제적
역할에 보다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은데요.
<> 김 원장 =대북정책에서 미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만 그 무게중심은 이제 미국무부가 아닌 월스트리트의
금융자본가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봐야 할 것입니다.
한국정부가 추진하는 대북정책에 대한 국제적 시각이란 다름아닌 월스트리트
투자분석가들의 시각이란 얘깁니다.
경협이 활성화됐을 경우를 예로들어 볼까요.
한국기업이 북한에 위탁생산한 물건을 해외시장에 수출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때엔 국제협약이나 국제법 등을 면밀히 조사해 국제사회내에서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할겁니다.
외국인들이 보면 불공정 거래의 요소가 있거든요.
우리입장에선 남북간 물자나 사람의 왕래가 국내간 교역이라고 "특별법"도
만들어 놓고 그랬지만 WTO시대에 외국인들도 그렇게 봐줄 것인가에 대해선
회의적입니다.
<> 김 전차관 =연장선에서 말씀드리면 미국의 빈자리를 일본이 메워줄
것인가가 관건인데, 특히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경제적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본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경제적 리더역할을 할 의사도, 할 능력도
현재로선 없어 보입니다.
따라서 미국과 일본의 긴장관계는 더욱 높아질 수 있죠.
과거의 예로 보면 미국과 일본 등 강대국간의 긴장 관계가 고조될수록
남북한간의 경제협력 필요성은 높아졌습니다.
남한도 경협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고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 김 원장 =여러가지 정황으로 봐서 대북경협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새정부의 대북정책기조를 보더라도 이는 확인됩니다.
단 대북경협에서의 책임은 이제 경협의 주체인 기업자신이 져야합니다.
경협을 벌여만 놓고 뒷수습은 정부가 해달라는 식이어선 곤란합니다.
또다른 의미에서의 모럴 해저드(moral hazard)일 수도 있고요.
미국 월스트리트 자본가들이 생각하는 "시장경제의 합리성"에 맞는 대북
경협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대북경협에서도 시장경제와 글로벌 스탠더드의 룰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정치적 동기에 따라 결정되고 취소되는 대북경협은 리스크가 큽니다.
<> 김 이사장 =최근 북한에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가 있었습니다.
조만간 대의원대회가 소집돼 김정일을 주석으로 추대하리라는 것이 북한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예상입니다.
미국이나 일본 등의 시각도 마찬가집니다.
김정일의 주석취임은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 김 전차관 =김정일은 오는 9월9일 북한 정권 창건 기념일을 맞아
주석으로 취임할 것이 거의 확실시됩니다.
그러나 주석직에 오른다 하더라도 새로운 어떤 비전을 제시하기는 힘들
것으로 봅니다.
정치적으로는 군부를 중심으로 김정일체제 공고화에 나설 것이고,
경제적으로는 지난 수년간 묵인해오던 변화를 일부 수용하는 등 부분적
개혁정책을 쓸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외적으론 대미.대일 관계개선 노력을 축으로 외국자본의 기술유치를 위한
경제외교를 펼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김정일이 여태껏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석에 취임했다고 해서 대남관계에서 획기적인 변화나 전반적인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단 관광 등 제한적인 경제협력이나 예술문화 부분의 민간교류는 어느정도
확대되지 않겠나하는 생각입니다.
<> 김 원장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기업의 경우에도 2세 경영자가 갖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창업자의 성취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후계자인 자신의 새로운 성과를
과시해야 하는 문제지요.
그러나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려 하면 할수록 선대의 성취를 깎아내려야 하는
모순이 발생하거든요.
북한의 김정일 역시 2세 경영자가 갖는 이같은 모순적 상황에서 예외가
아니라고 봅니다.
전략개념을 수정할 수 없으니 선택의 폭이 그만큼 좁다는 얘깁니다.
김정일 입장에서 보면 김일성의 사업을 계승하되 더 크고 더 광범위하게
벌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 이 소장 =남북관계가 평화공존의 틀을 넘어 통일로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또 우리가 그런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북한이 불가피하게 개방하는 과정에서 신경질적인 반응도 보일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때 우리의 자세가 중요한 데 과민반응을 보여선 안될 겁니다.
즉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을 버리고 분야별로 대북관계를 정상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경제 사회 문화 등 부문별로 나누어 분산처리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 김 원장 =독일의 경우 블란트가 동방정책을 선언하고 나서 실제 독일
통일이 이루어지기까지 20년이 걸렸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햇볕정책"이란 대북한 화해협력정책이 실제 효과를 거두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뜻입니다.
속도를 두배로 내더라도 통일까지는 최소한 10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통일이란 느긋하게 인내심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죠.
단시간내에 가시적인 효과를 내기위해 인위적으로 과장된 수단을 추진하다
보면 오히려 부작용만 생깁니다.
<> 김 전차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위해서라도 대북관계의
개선은 필요합니다.
과거 남북관계를 보면 남측은 북측이 싫어하는 것만, 북측은 남측이
싫어하는 것만 제의하고 추진하려 합니다.
이젠 서로 좋아하는 것을 제의해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리라 봅니다.
동.서독의 통합과정이나 대만.중국과의 관계를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남북한간에 축적된 신뢰가 너무도 적다는 점입니다.
<> 김 이사장 =한국은 지금 중요한 갈림길에 있습니다.
경제적으론 빠른 구조조정을 해야하고 정치적으론 속도감있는 개혁을
추진해야 합니다.
두가지는 동시에 추진돼야 할 것으로 보여집니다만 만약 우리의 경제개혁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사회는 불안정해지고 민주적 질서도 위협받게 됩니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로 고착상태에 빠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대북관계에서는 그 어느때보다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같은 분위기를 모아 올바르게 방향을 잡고 강력히 추진해 나갈
정치적 리더십이라 생각됩니다.
그런 리더십에 기대를 걸면서 오늘의 좌담회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7일자 ).
정경분리원칙에 기초한 새정부의 "햇볕정책"은 남북간 평화공전의 가능성을
한층 높이고 있으며 북한의 체제정비로 남북 정상회담의 가능성도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이에 한국경제신문사는 통일경제연구협회와 공동으로 "한반도 평화정착과
남북한간 경제교류"라는 주제로 좌담회를 본사 17층 대회의실에서 가졌다.
김기환 통일경제연구협회이사장의 사회로 열린 좌담회에는 김경원 사회과학
원장, 김석우 전 통일원차관,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장 등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남북한간 신뢰를 토대로 교류와 접촉증대를 꾀하는 것이 통일에
이르는 실질적인 길"이라며 "민족 내부역량을 결집해 주변정세를 적절히
활용할 줄 아는 정치적 리더십이 그 어느때보다 절실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좌담회 내용을 요약한다.
< 정리 = 이의철 기자 eclee@ >
-----------------------------------------------------------------------
<> 김기환 통일경제연구협회 이사장 =최근의 남북관계에선 몇가지 주목할
만한 변화를 엿볼 수 있습니다.
우선 새정부의 대북정책기조는 그간 북한의 몇몇 도발사건에도 불구하고
"햇볕정책"으로 일관되게 유지되고 있습니다.
또 "정경분리"에 근거한 경협활성화 조치로 남북간 경협무드가 어느 때보다
무르익고 있다고 판단됩니다.
일단 "햇볕정책"은 남북관계 개선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생각되는데요.
<> 김석우 전통일원차관 =장기적으론 "햇볕정책"이 남북관계 개선에 도움을
줄 것으로 봅니다.
"햇볕정책"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안보와 화해의 병행추진이거든요.
북한에선 이를 또다른 "흡수통일론"이라고 비난하고 있지만 햇볕정책은
북한의 실체를 인정하는 바탕위에서 성립합니다.
일각에서 비판하듯 일방적 시혜책은 분명 아닙니다.
현재의 남북한 대결구도를 평화공존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이고
유일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지요.
외국인들의 시각도 긍정적입니다.
왜냐하면 북한 붕괴를 전제로 한 대북정책은 반드시 긴장관계를 유발하게
되는 데 주변국 입장에선 이것이 별로 달갑지 않거든요.
<> 이한구 대우경제연구소장 =남북한 경제협력의 관점에서 보면 "정경분리"
원칙이 더 피부에 와닿습니다.
특히 경협와중에서 무장간첩침투 같은 돌출사건이 발생했을 때의 대처방식이
문제가 된다고 봅니다.
정부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애쓰는 것은 분명합니다.
잠수정사건이후에도 현대측의 "소떼 2차 북송"은 연기됐지만 금강산 관광을
위한 실무협의는 계속 진행중이거든요.
<> 김경원 사회과학원장= 잠수정이나 무장간첩침투사건을 이해하려면 북한이
처한 입장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북한은 내부긴장을 유지하기 위해 외부로부터의 위협을 지속적으로 선전해야
하는 체제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외부위협이 점차 없어지는 상황이거든요.
가장 큰 위협요소였던 미국과 관계개선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미국은 앞으로 북한의 잠재적인 우방으로 부상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남한만이 북의 유일한 위협세력이 되는데 북한 입장에서 보면
남측과 경협의 필요성도 있지만 긴장관계 또한 필수적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북한은 남한정부와 관계개선을 하지 않고서도 민간기업과 경제
협력을 할 수 있는 겁니다.
<> 이 소장 =그렇습니다.
경협을 놓고 얘기하자면 민간기업에 최대의 자율성을 주되 책임도 기업이
지도록 하는 정책방향이 돼야할 것 같습니다.
물론 북한과는 특수관계인 점이 감안돼야 하겠지요.
기본적으로 경협의 주체가 민간기업일 경우 민간기업에 자율성을 주는
정부의 정책방향은 옳다고 봅니다.
경협과정에서 기업이 의사결정을 바꾸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정치적
논리에 의해 경협이 영향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것이죠.
확실한 정경분리정책을 고수하는 것이 정책의 일관성면에서도 바람직한
것이거든요.
<> 김 원장 =경협이 갖고 있는 딜레마중 하나는 경협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북한이 이니셔티브를 갖게 된다는 점입니다.
남한 기업들은 북한이라는 파트너가 있기 때문에 다양한 경협프로그램을
제시할 테고, 이는 곧 뷔페식 경협메뉴가 되는 겁니다.
북한 입장에선 입맛에 맞는 것만 취사선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금강산 관광문제만 보더라도 관광객들은 가능하면 북한측 민간인들과
만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반면 북한은 남쪽 관광객이 방북함으로써 생길 수 있는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각종 장치들을 디자인할 것입니다.
만일 금강산 관광프로그램이 체제에 위협이 안되는 수준이라면 북한이
용인하겠지만 조금이라도 위험하다고 판단되면 북한은 즉시 이를
중단시키려고 할 겁니다.
<> 이 소장 =적절한 비유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남한 기업입장에서 보면 현 시점에서 뷔페에 내놓을 음식이 별로
없어요.
구조조정이다 정리해고다 해서 제 앞가림하기도 벅차거든요.
IMF(국제통화기금)지원을 받기 이전이라면 무리해서라도 많은 음식을
내놓으려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입장이 안됩니다.
IMF관리체제에 들어선 이후 기업들이 대북경협을 추진하는 데 코스트가
훨씬 높아진 것도 사실입니다.
<> 김 이사장 =미국의 동아시아정책과 연계해 남북간 경협을 살펴보는
것은 어떻습니까.
미국으로서도 냉전시대 세계경찰로서의 정치적 군사적 역할보다는 경제적
역할에 보다 큰 의미를 두고 있는 것 같은데요.
<> 김 원장 =대북정책에서 미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만 그 무게중심은 이제 미국무부가 아닌 월스트리트의
금융자본가로 넘어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봐야 할 것입니다.
한국정부가 추진하는 대북정책에 대한 국제적 시각이란 다름아닌 월스트리트
투자분석가들의 시각이란 얘깁니다.
경협이 활성화됐을 경우를 예로들어 볼까요.
한국기업이 북한에 위탁생산한 물건을 해외시장에 수출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때엔 국제협약이나 국제법 등을 면밀히 조사해 국제사회내에서
오해가 없도록 해야 할겁니다.
외국인들이 보면 불공정 거래의 요소가 있거든요.
우리입장에선 남북간 물자나 사람의 왕래가 국내간 교역이라고 "특별법"도
만들어 놓고 그랬지만 WTO시대에 외국인들도 그렇게 봐줄 것인가에 대해선
회의적입니다.
<> 김 전차관 =연장선에서 말씀드리면 미국의 빈자리를 일본이 메워줄
것인가가 관건인데, 특히 동아시아에서 일본의 경제적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본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경제적 리더역할을 할 의사도, 할 능력도
현재로선 없어 보입니다.
따라서 미국과 일본의 긴장관계는 더욱 높아질 수 있죠.
과거의 예로 보면 미국과 일본 등 강대국간의 긴장 관계가 고조될수록
남북한간의 경제협력 필요성은 높아졌습니다.
남한도 경협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고 북한도 마찬가지입니다.
<> 김 원장 =여러가지 정황으로 봐서 대북경협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새정부의 대북정책기조를 보더라도 이는 확인됩니다.
단 대북경협에서의 책임은 이제 경협의 주체인 기업자신이 져야합니다.
경협을 벌여만 놓고 뒷수습은 정부가 해달라는 식이어선 곤란합니다.
또다른 의미에서의 모럴 해저드(moral hazard)일 수도 있고요.
미국 월스트리트 자본가들이 생각하는 "시장경제의 합리성"에 맞는 대북
경협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대북경협에서도 시장경제와 글로벌 스탠더드의 룰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정치적 동기에 따라 결정되고 취소되는 대북경협은 리스크가 큽니다.
<> 김 이사장 =최근 북한에선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가 있었습니다.
조만간 대의원대회가 소집돼 김정일을 주석으로 추대하리라는 것이 북한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예상입니다.
미국이나 일본 등의 시각도 마찬가집니다.
김정일의 주석취임은 남북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 김 전차관 =김정일은 오는 9월9일 북한 정권 창건 기념일을 맞아
주석으로 취임할 것이 거의 확실시됩니다.
그러나 주석직에 오른다 하더라도 새로운 어떤 비전을 제시하기는 힘들
것으로 봅니다.
정치적으로는 군부를 중심으로 김정일체제 공고화에 나설 것이고,
경제적으로는 지난 수년간 묵인해오던 변화를 일부 수용하는 등 부분적
개혁정책을 쓸 가능성이 있습니다.
대외적으론 대미.대일 관계개선 노력을 축으로 외국자본의 기술유치를 위한
경제외교를 펼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김정일이 여태껏 실질적인 권력을 행사해 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석에 취임했다고 해서 대남관계에서 획기적인 변화나 전반적인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단 관광 등 제한적인 경제협력이나 예술문화 부분의 민간교류는 어느정도
확대되지 않겠나하는 생각입니다.
<> 김 원장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기업의 경우에도 2세 경영자가 갖는 딜레마가 있습니다.
창업자의 성취를 훼손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후계자인 자신의 새로운 성과를
과시해야 하는 문제지요.
그러나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려 하면 할수록 선대의 성취를 깎아내려야 하는
모순이 발생하거든요.
북한의 김정일 역시 2세 경영자가 갖는 이같은 모순적 상황에서 예외가
아니라고 봅니다.
전략개념을 수정할 수 없으니 선택의 폭이 그만큼 좁다는 얘깁니다.
김정일 입장에서 보면 김일성의 사업을 계승하되 더 크고 더 광범위하게
벌일 것으로 예상됩니다.
<> 이 소장 =남북관계가 평화공존의 틀을 넘어 통일로 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또 우리가 그런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만들어가야 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북한이 불가피하게 개방하는 과정에서 신경질적인 반응도 보일 것으로
판단됩니다.
그때 우리의 자세가 중요한 데 과민반응을 보여선 안될 겁니다.
즉 "모 아니면 도"라는 생각을 버리고 분야별로 대북관계를 정상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경제 사회 문화 등 부문별로 나누어 분산처리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은가
생각됩니다.
<> 김 원장 =독일의 경우 블란트가 동방정책을 선언하고 나서 실제 독일
통일이 이루어지기까지 20년이 걸렸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햇볕정책"이란 대북한 화해협력정책이 실제 효과를 거두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뜻입니다.
속도를 두배로 내더라도 통일까지는 최소한 10년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통일이란 느긋하게 인내심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죠.
단시간내에 가시적인 효과를 내기위해 인위적으로 과장된 수단을 추진하다
보면 오히려 부작용만 생깁니다.
<> 김 전차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위해서라도 대북관계의
개선은 필요합니다.
과거 남북관계를 보면 남측은 북측이 싫어하는 것만, 북측은 남측이
싫어하는 것만 제의하고 추진하려 합니다.
이젠 서로 좋아하는 것을 제의해 실천하는 자세가 필요하리라 봅니다.
동.서독의 통합과정이나 대만.중국과의 관계를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남북한간에 축적된 신뢰가 너무도 적다는 점입니다.
<> 김 이사장 =한국은 지금 중요한 갈림길에 있습니다.
경제적으론 빠른 구조조정을 해야하고 정치적으론 속도감있는 개혁을
추진해야 합니다.
두가지는 동시에 추진돼야 할 것으로 보여집니다만 만약 우리의 경제개혁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사회는 불안정해지고 민주적 질서도 위협받게 됩니다.
남북관계도 마찬가지로 고착상태에 빠지게 될 것으로 보입니다.
대북관계에서는 그 어느때보다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같은 분위기를 모아 올바르게 방향을 잡고 강력히 추진해 나갈
정치적 리더십이라 생각됩니다.
그런 리더십에 기대를 걸면서 오늘의 좌담회를 마무리하겠습니다.
참석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