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금융기관과 기업은 과감히 폐쇄하고 개혁속도를 더욱 높여야 한다"

워싱턴에 있는 미 한국경제연구원(KEIA)의 피터 벡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국제금융기관과 경제전문가들 사이에 한국의 개혁방법이 비효율적이며
속도도 느리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며 이같이 충고했다.

단적인 예로 한국정부는 금융기관간 합병과 기업간 업종교환인 "빅딜"이
경제개혁의 전부인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데 이는 오히려 "부실의 덩치"만
키워 결국 경제에 엄청난 부담만 가져 올 수 있다는 얘기다.

따라서 부실은행을 경영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금융기관에 떠넘기기 보다는
과감히 폐쇄시키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경제개혁에 있어서 정부의 역할과 관련, 벡 연구원은 "직접 개입하기보다는
공정거래위원회나 금융감독위원회의 독립성을 강화해 이들 기관을 통한
효율적인 감독 및 규제시스템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상대적으로 재경부의 역할은 대폭 축소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벡 연구원은 대기업들에도 일침을 가했다.

비교적 규모가 적은 대기업들이 구조조정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소위 "빅5"그룹은 모호한 개혁프로그램만 내놓고 미적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벡 연구원은 "한국경제는 아직 바닥을 치지 못한 것 같다"며 "따라서
올해 마이너스 4%의 경제성장도 지나친 낙관"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과거 10년동안 경제개혁에 소극적인 결과 오늘날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일본을 거울삼아 한국은 이같은 전철을 되풀이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업문제를 김대중 정부가 당면한 최대의 과제라고 지적한 벡 연구원은
"최근 한국정부가 실업자를 구제하기위해 재정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투자를 늘리기로 한 것은 매우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벡 연구원은 그러나 일부 노조지도자들이 구조조정과정에서 발생하는
해고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 것 같다며 공장
가동률이 50%를 밑도는데 전체 직원을 껴안고 간다는 것은 모두 침몰하자는
얘기와 같다고 꼬집었다.

새로운 경제모델에 대해 벡 연구원은 "아시아 경제난과 미국의 전례없는
성장으로 일부 전문가들사이에 미국식 모델이 최선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일시적일 수 있는 현상에 현혹되선 안된다"고 말했다.

미국식 모델 또한 허점투성이이며 한국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얘기다.

벡 연구원은 "7년간의 장기호황이라는 큰 물줄기도 배를 모두 띄우는데
실패했다"며 "빈부간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게 그 일례"라고 주장했다.

백악관과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에서 수많은 부랑인들이 배식을
받기위해 줄지어 서 있는게 미국경제의 현주소라며 섣부른 모방은
금물이라고 말했다.

최근 논란이 일고 있는 아시아적 가치와 관련, 벡 연구원은 "60년대와
80년대 그리고 오늘에 이르면서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평가는 상황에
따라 극과 극을 달렸다"며 "어떻게 똑같은 가치가 한때는 매도되고
또 한때는 극찬을 받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시아적 가치는 경제위기와 크게 관련이 없다는게 그의 결론이다.

지난 82년 설립된 KEIA는 한국경제에 대한 미국 사회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미 양국의 경제전문가들이 참석하는 세미나, 컨퍼런스 등을 개최하고
한국경제와 관련한 각종 연구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