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은 이 여름방학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컴퓨터의 사이버 공간에서도 이런 세계를 만날수 있을까.

내가 "깊은 고요의 빛깔"이라고 이름한 내 여름 체험 하나를 온통 소음
뿐인 이 세상에서 갈팡질팡 헤매다니는 우리 아이들에게 선물하고 싶다.

십리 산길을 걸어 소년을 읍내 중학교엘 다니고 있었다.

동무도 없이 거의 혼자일 때가 많았다.

철따라 꽃도 피었겠고 낙엽도 밟았을 것이며 눈도 내렸겠지만 내 가슴에
오늘까지 아주 선명한 모습으로 하나의 판각처럼 남아 있는 것을 쨍한 여름
한낮 그 산길에 넘치게 고이고 있었던 "깊은 고요의 빛깔"이다.

길가엔 하얀 찔레꽃이 피어 있던가 그랬고 물씬 풍기는 풀내음 사이로
숨어드는 늘메기(뱀의 일종)를 만나기도 했다.

그러나 역시 그 고요함 속에서 소년의 친구가 되어 주었던 것은 쇠똥구리.

이놈들이 하는 짓이 묘했다.

흑단같이 단단한 등판을 따가운 햇볕속에 반짝거리며 이 갑각류의 곤충들은
꼭 암수 내외가 짝을 지어 길가에 떨어져 있는 쇠똥을 동글동글 열심히
굴려가고 있었다.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었다.

쫓아가 보면 굴 속에다 차곡차곡 그것들을 저장하고 있었다.

그것이 먹이였다.

한참씩을 쪼그려앉아 이것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주위가 더욱 고요속에
가라앉는 것을 느끼곤 했다.

소리없이 일하고 있는 "쇠똥구리"내외, 세상이 모두 그리로 빨려드는 것
같았다.

그런 주변을 또 비단벌레들이 낮은 소리로 날아다니곤 했다.

아무튼 그 십리 산길에서 만났던 여름 한낮의 내 내면 풍경을 나는 "깊은
고요의 빛깔"이라고 이름해 오고 있다.

고요에도 빛깔이 있고 형체가 있다.

그것이 보이고 만져진다.

또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에 깊게 접근해 갈 때 이것이 하나의
예인력이 되어 준다.

내 영혼의 한 정황으로 그 모습을 같이 하고 있다.

밖으로만 뛰어다니는 우리 아이들에게 이런 내면적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하고 싶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8월 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