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계열기업을 거느리고 있는 우리나라 대기업그룹의 지배구조하에서
부당내부거래의 근절 필요성은 절실하다고 본다. 그룹내 다른 기업으로부터
자금지원을 받거나 계열에 속하지않은 다른 기업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계열
기업간 거래가 이뤄질 경우 공정한 시장경쟁이 이뤄지지 못한다.

뿐만아니라 그룹내 우량기업들이 부실계열기업을 지원함으로써 우량핵심기업
까지 동반 부실화되고, 동시에 부실기업의 퇴출을 지연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우려가 크다. 실제로 우리 기업들에게서 그같은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9일 5대 기업집단을 대상으로 부당내부거래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발표한 것은 그같은 비효율을 제거하자는 것으로 매우
의미있는 조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번 조사결과가 그러한 정책목표에
얼마나 충실하게 이뤄졌고 위반사항을 합리적으로 처리했느냐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않다.

공정위는 5대기업집단소속 1백15개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지난해
4월부터 금년3월까지 1년동안 4조2백63억원규모의 부당내부거래를 적발,
7백2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고 발표했다. 공정위의 발표대로라면 엄청난
규모의 부당내부거래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부당내부거래의
기준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 의심스러운 구석이 적지않아 논란을 빚고 있다.
예컨대 계열기업이 발주한 건설공사의 대금을 몇달 늦게 받았거나 연체되고
있다해서 계열사 지원을 위한 부당내부거래에 포함시키고, 계열기업이 발행한
채권매입을 부당내부거래로 간주한 것은 지나친 확대해석이라는 것이다. 또
채권매입시 시장금리보다 턱없이 낮은 금리를 적용하거나 현저하게 유리한
조건으로 인수해주었다면 부당내부거래가 명백하지만 그렇지않은 경우는
일상적인 기업활동으로 보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더구나 내부자거래 단속강화에 대한 지침이 내려진이후 처음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지나치게 무거운 제재조치를 내린 것은 적절치못하다는게 기업들의
항변이다. 당연히 정상적인 거래라고 생각했던 것까지 부당내부거래라는
판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조사 이전에 좀더 면쾌한 기준이 제시됐어야 하고
계도에 중점을 두었어야 옳았다고 본다. 그런 시각에서 과징금이 너무 과중
하다는 얘기도 나올 수 있다.

한가지 더 우려되는 것은 내부자거래조사가 특정 정책목적, 즉 대기업 재편
또는 기업구조조정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점이다. 재계에서는 이번
조사자료가 금융감독위원회에 넘겨져 2차 퇴출기업선정에 활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자율추진이 바람직한 기업구조조정을 전혀 다른 목적의 정책수단
을 동원해 압박하는 것은 권위주의 정부 사고의 연장에 다름아니다. 내부자
거래의 단속이 공정한 시장경쟁여건의 확보차원을 넘어 정부의 기업지배수단
으로 악용될 경우 정책불신만 키울 것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