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구 < 대우경제연구소장>

구조조정정책은 경제주체들을 과거와 다른 질서 속에서 생존과 번영이
가능하도록 촉구하는 정부의 제반 행동을 의미한다.

이제까지의 구조조정정책은 그 방향이나 속도면에서 대부분 IMF와 합의한
구도에 맞춰왔기 때문에 국제기구들로부터 괜찮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또 외국언론이나 투자자들은 약간 불만스런 표정이고, 한국의 당사자들은
불평이 대단하다.

그러한 불평 중에는 구조조정에 따르는 고통회피의 목적이 제법 많다고
보이지만 귀를 기울여야 할 내용도 많다.

첫째, "구조조정은 왜 하느냐"와 연관된 것이다.

구조조정은 단기적으론 대내외 신용회복, 중장기적으론 새로운 차원의
도약을 준비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

그러나 거품을 뺀다고 정책을 축소일변도로만 추진하게 되면 재도약의
출발점이 너무 뒤로 가게 된다.

기업들의 신용제고측면에서도 부채를 줄이는 것만이 아니라 채산성을
올리는 게 보다 건설적 정책이다.

부채비율은 선진국수준으로 빨리 낮추라면서 행정규제 자본시장발달
소비자금융기회 기술수준 노동행태 준조세부담 등은 후진국수준을 유지하면
미안하지 않은가.

부수는 것은 쉽고 만드는 것은 어렵다.

구조조정은 양자간 균형을 찾는 과정이라야 한다.

둘째, "구조조정의 체계"와 관련된 문제이다.

이번은 위기관리성격이 강하므로 평상시와 같은 방식의 시장경제적
경제운용에 한계가 있다.

그러나 위기관리라고 해서 정부재량이 넘치면 안된다.

지시경제운영방식을 계속하면서 시장기능이 작동되지 않는다고 변명하지만
그런 분야는 거의 없다.

시장기능이 작동되도록 인프라를 만드는 게 정부의 책임이다.

화급하게 정부가 꼭 나설 일이면 대담하게 주도권을 잡고 조치한 후 결과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가 아쉽다.

그럴때는 책임자의 배후 독려보단 진두지휘가 더 효과적이다.

셋째, 경제위기의 내용을 크게 나누면 외환위기 금융위기 산업조직
붕괴위기로 구분된다.

서로 연결은 되어 있지만 위기의 성격이 다르므로 단계별로 집중 추진할
정책과제는 구분해야 한다.

단기자금문제와 경쟁력 문제를 혼동하면 안된다.

경제위기라고 괜히 "끼워팔기"식의 정책추진이 보이면 전체적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잘 설득되지 않는다.

강제적 빅딜과 엿가락처럼 마음대로 늘려잡는 대기업내부거래단속이 전형적
예이다.

그나마 신용이 괜찮은 조직을 계속 흔들기보다는 신용붕괴가 심한 분야의
신뢰성제고방법을 찾아주는 게 더 급하다.

대기업문제는 산업구조조정정책의 비전제시시기와 맞춰 다루면 된다.

그보다는 기업이나 금융기관들이 구조조정을 서둘러 할 수 있도록 조세나
금융, 기타 제도면에서 한시적으로나마 걸림돌을 제거하는 게 급선무이다.

자산시장에서의 손바뀜을 도와줄 네트워크구축이 필수적이다.

외환보유고확충도 좋지만 외채를 계속 늘려서는 곤란하다.

그에 따라 환율을 절상시키면 수출에 타격이 크다.

같은 외국자본중에서 외채보다 외국인직접투자를 우대해야 한다.

외국자본보다는 수출증대애로제거와 해외인력송출에 대한 인센티브제공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넷째, "구조조정의 경제속도, 우선순위"문제이다.

구조조정하면 모든게 무사통과되는 게 아니다.

구조조정과정중 마찰 최소화와 좋은 결과가 중요하다.

효율성이나 조직붕괴후 재구축의 용이성, 파급효과측면에서 우대돼야 할
민간부문이 왜 정부부문보다 먼저 대폭 축소돼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목욕탕요금 낮추라고 국세청 동원하고 위생검사를 새삼스레 들먹거리던
과거의 행태가 이번의 기업구조조정과정에서 매우 빈번하게 등장하고
자본주의사회에서 개별경제주체의 유한책임이 부정되는 사례가 나오면
곤란하다.

지금은 현장에서 뛰는 사람들의 시간과 의욕에 대해 시비걸고 과거캐기하는
사람들의 빼앗는 일이 계속되면 안된다.

사정보다 선무가 우선되어야 한다.

다섯째, 구조조정의 고통을 부담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래의 도약을
위해서이다.

구조조정과정에서 누가 얼마만큼 희생하는 게 좋은가라는 세밀한 원칙마련을
위해 좀 더 고민해야 하겠다.

집단주의행태의 끝없는 확산 때문에 구조조정은 지지부진하게 된다.

퇴출문제는 안보이는 손에 의해 처리하는 게 상책이다.

신용있고 능력있으며 투명한 선두그룹이 해외로부터 자금을 유치하든,
자산을 매각하든, 거래확장을 도모하든 그들의 창의성과 활동성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