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외환위기를 놓고 멕시코와 아시아를 대하는 게 다르고, 엔화폭락을
두고도 만만해진 일본에는 "군기"를 잡고 버거운 중국에는 눈치보는 나라가
미국이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하다.
"미국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이다.
적어도 국제문제에 있어서는 "두개의 잣대(double standard)"를 휘두르고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국내에선 잣대가 하나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 역시 "아니다"이다.
최근 월가에서 일고 있는 한 논란이 그 사례다.
신규공모(IPO)된 주식의 매매자유에 대한 논란이 그것이다.
소액 개인투자자들이 매입한 IPO 주식에 대해서는 매각할 자유가 봉쇄돼
있는 반면 기관투자가 등 큰손들에게는 무제한적으로 치고 빠지기가 허용되고
있다.
속내용은 이렇다.
증권회사들은 IPO 주식을 배정받은 개인투자자들에게 최소 3개월 이상
"의무보유"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단기매매를 허용하면 자칫 IPO 주식가격이 붕괴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기관투자가들에 대해서는 이런 논리를 비껴주고 있다.
기관 투자가들의 심기를 건드렸다가는 IPO 주식을 대량 소화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정기간 내 매각금지"라는 내규를 위반한 개인 투자자들에 대해서는
곧장 "제재조치"가 떨어진다.
향후 IPO주식 배정대상에서 제외시키는 것이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IPO주식은 미국에서도 "노다지"로 통한다.
따라서 IPO주식 추가배정을 금지시킨다는 으름장 만으로도 개인 투자자들을
바짝 옥죄어 놓기에 충분하다.
더군다나 그 속내에는 엄청난 모순이 자리잡고 있다.
IPO 주식들이 대게 초기에 강세를 보이는 데는 바로 개인 투자자들의
"울며 겨자 먹기식 강제보유"가 큰 몫을 거들고 있다.
IPO를 하는 기업들은 투자자들을 최대한 끌어 모으기 위해 "법이 허용하는
테두리 내에서" 경영실적 등을 실제보다 최대한 부풀리는 게 상례다.
따라서 상장 초기에는 강세를 보이다가 "밑천"이 드러나는 순간부터는
미끄럼을 타기 시작한다.
금융 전문지인 저널 오브 파이넌스는 최근호에서 이와 관련한 실증적인
통계를 제시하고 있다.
올 들어 신규상장된 주식들 중 상당수가 몇 달을 넘기지 못하고 하락세로
반전됐다는 통계다.
3-5년간의 장기 추세를 분석한 결과로는 IPO 주식의 연평균 상승폭이
기존 주식에 비해 5-10%씩 낮다는 것이다.
결국 "혹시나"하는 기대로 IPO주식 매입에 매달리는 개인투자자들의
호주머니 돈을 월가의 "실세 집단"이 조직적으로 챙기고 있다는 얘기다.
모순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유력 정치인 등 "개인 실세"들에게도 기관투자가들에 준하는 "보유의무
면제" 혜택이 주어지는 것 역시 공개된 비밀이다.
외환위기와 엔화폭락, 그리고 IPO부조리에서 드러나는 미국의 "이중
잣대"에는 한가지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힘"이 있어야 미국의 주류 사회로부터 대접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외환위기 한파와 씨름하고 있는 한국이 서글프게 곱씹어야 할 대목이다.
< 뉴욕=이학영 특파원 hyrhee@earthlink.ne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3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