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신주쿠역의 노숙자들과 뉴욕 지하철의 홈리스(Homeless)들을 무척이나
측은한 눈으로 쳐다봤던 우리에게 서울역지하에서 시작해 다른 지하철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노숙자는 더 이상 새롭지도 신기하지도 않은 현실로 다가왔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두자리 숫자의 실업률은 우리와 거리가 먼 유럽국가들의
얘기였지만 최근 퇴출기업의 명단이 발표됨에 따라 본격적으로 시작될 기업의
구조조정으로 실업인구가 앞으로도 더욱 늘어나리라는 전망에 우리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IMF 체제하에서 천정부지로 오른 금리 때문에 오히려
일부계층 사람들의 금융자산증식은 가속도까지 붙게 되었고 이 세상을 더불어
사는 것 같지 않은 일부 부유층의 호화 사치성 소비행태는 어려움을 당한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우울하게만 한다.

환란 직후 나라를 구하는 마음으로 시작한 금모으기 행사에 3백50여만명이
참가하고 20억달러가 넘는 금을 수집하여 우리의 저력을 전세계에 보여
주기도 하였고 전화한통에 1천원의 성금이 접수되는 사랑의 리퀘스트에 전국
가구수의 절반가량이 참여할 정도로 우리의 이웃사랑은 남다른 모습이건만
놀랍게도 금모으기나 사랑의 전화에 참여한 대부분은 서민계층이라고 한다.

"깨알 천번 굴러봐야 호박 한 번 구르니만 못하다"는 속담처럼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행사에 깨알들 마음의 몇십분의 일이라도 호박들이 굴러
준다면 마음이 허전한 사람들의 짐을 훨씬 가볍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얼마나 더 나이를 먹어야 마음은 자라고 마음의 키가 얼마나 자라야 남의
몫도 울게 될까요"

유안진의 "키"라는 시의 한 구절은 우리역사상 어느 때 보다도 자선하고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널려있는 이때에 이웃사랑에 인색한 이들에게 사람
몫을 하라는 ''호소''처럼 들린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