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기업 퇴출은 정부 은행 기업 모두에게 새로운 출발을 위한 진통이다.

지금은 아프지만 잘하면 모두에게 약이 될수 있다.

자력생존능력이 없는 기업이 망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가망성이 없는 기업을 채권자가 강제로 파산시키는 것(Involuntary
Bankruptcy)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의 파산법에도 분명히 규정되어 있으며
실제 이용도 되고 있다.

그런데 이번 부실기업 퇴출이 이렇게 많은 관심과 동요를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그것이 가져올 금융자산의 보다 효율적인 이용이라는 명백한 이점
이외에도 그것이 가진 몇가지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첫째, 채권자가 비로소 채권자로서의 힘과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는
하나의 계기로 설정될 수 있다.

사실 우리 은행들은 그동안 재벌의 볼모가 되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겉으로는 큰소리쳤을지 몰라도 사실 너무나 많은 돈이 물려 있음으로 해서
그 재벌이 총체적으로 부도가 나기 전에는 계열사의 어느것도 망하게 둘 수
없었다.

이번 이 퇴출기업 선정은 재벌 전체가 망하기 전에라도, 계열사에 대한
추가여신제공을 거부할 수 있는 은행의 기본권을 확인하고 선언해 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두번째 의미는, 재벌기업 모든 계열사의 신성불가침 원칙의 파괴이다.

지금까지는 재벌의 어느 계열사를 망하게 한다는 것은 그 재벌에 대한
모독이고 있을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지배해왔다.

그것이 아무리 불량한 계열사라도 살려야 한다는 부담을 사회전체로는
물론, 해당 재벌도 엄청나게 느껴왔고 그러한 부담이 사실 많은 무리수를
낳은 것이 사실이다.

이번 부실기업 퇴출은 재벌계열사도 얼마든지 망하게 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을 갖는 계기가 될 수 있고, 이것은 어떤 기업이든 능률적이지 못하면
생존하지 못한다는 너무나 당연한 원칙이 이 땅에도 비로소 자리잡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셋째, 이것은 일종의 산업계의 정리해고라는 의미가 있다.

정리해고를 받아들인 노에 대한 상응조치로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은 총체적
개혁을 향한 노사간 상호신뢰 기반구축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 이번 조치에 있어 가장 큰 문제점은 이것이
시장주의에 역행하지 않나 하는 것이며 또 이에 대한 세계의 우려이다.

정부 나름대로 이것이 은행의 자율적인 조치인양 모양을 취하느라 상당히
고심한 흔적이 있지만 그 노력은 별로 효과적이지 못했던 것 같다.

사실 세계의 대부분 전문가들은 한국경제위기의 본질이 딱 한가지, 즉
은행에 대한 정부의 과도한 간섭에 있었다고 믿고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가 은행을 깊숙이 지배한다는 인상은 우리의 국제적
신뢰도에 매우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런면에서 이 시점에서 퇴출명단에 들어있지 않은 기업에 대한
"협조융자협약"운운하는 것은 외국인의 눈에 보이는 금융자율을 향한 한국의
결의에 결정적인 흠집을 낼수 있다.

눈감고 아웅하는 식으로 얼버무리지 말고 국가적 비상사태이기 때문에
이번에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었으나 금융개혁이 이루어지면 상황이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것, 즉 순수한 의미의 감독이외의 정부 개입이 완전히
차단될 것임을 대내외에 확실히 천명하는 조치가 도리어 필요하다고 본다.

퇴출기업이 발표되었지만 걱정도 많다.

대부분 퇴출기업이 청산될 것이라고 하는데 사실상 고철값으로 팔리게
되는 것이니 너무나 아깝다.

직장을 잃게 되는 수많은 종업원들도 가슴이 아프다.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일률적 청산보다도 기존의 경영진(또는
종업원들)에게 회사의 자산을 매각한다든지(Management Buyout), 자산을
국제입찰에 부친다든지 하는 여러가지 방법을 강구해 봐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번 조치의 가장 큰 피해자는 종업원에 덧붙여 퇴출당하는
기업의 소액주주들이다.

기업이 이 꼴이 되기전에 주주들이 선진국같이 경영을 감시하고 경영진을
바꾸고 할 수 있는 여러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주어, 앞으로는 이들을 덜
억울하게 만들어야겠다.

< scjunn@kimchang.com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0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