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오전7시20분께 여의도 전경련회관 19층 경제인클럽.

제15차 ''전경련 구조조정 실무대책반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문을 열고
들어서는 기업 구조조정담당 실무자들의 얼굴에서는 의례적인 웃음마저
찾아볼수가 없었다.

퇴출기업 명단발표 이후를 대비하는 자리인만큼 아침부터 비장함이
감돌았다.

대화도 자괴섞인 위로의 말로 시작됐다.

"부채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부실화된 회사는 퇴출되는 게 당연한
것 아닙니까" "대출금을 빨아먹어온 계열사들이 없어지면 더 좋아질
겁니다"

초상을 치르고나면 "산사람은 살아야되지 않느냐"고 분위기를 다잡듯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되면서 대화내용은 달라졌다.

한 참석자는 "죽일 기업을 모아서 발표한 만큼 이제 나머지 기업들을
살리는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고 정부를 겨냥했다.

모 업체 관계자는 "은행이 판단해 하나씩 퇴출시켜도 될 것을 무슨
이벤트인양 이렇게 뜸들여가며 발표할 일이 뭐냐"고 불만을 토로했다.

55개 기업의 "살생부"가 공개된 이날 재계의 분위기는 대체로 이랬다.

인위적인 기업정리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았지만 "산 사람은 사람답게
제대로 살아야 한다"는 현실론이 주종을 이뤘다.

퇴출기업을 솎아낸 만큼 나머지 기업들에 대한 지원책을 정부가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경련도 이날 구조조정실무대책반 회의 결과를 모아 구조조정 촉진을
위한 개선안을 정부에 건의했다.

재계가 이처럼 "살아남은" 기업에 대한 지원책을 주문하고 나선데는
이유가 있다.

우선 퇴출기업 명단 발표가 가져올 부작용이 심각하다는데 있다.

특히 문제되는 것이 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 해소 대책.

전경련 이병욱 기업경영팀장은 "퇴출하는 계열사에 지급보증을 섰던
회사들이 연쇄적으로 부실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퇴출되는 기업들이 대출금을 상환할 여력이 없을 경우 보증 섰던
계열사가 갚아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방법이 없다는 설명이다.

또 퇴출기업과 거래하던 업체들은 자금난에 빠질 수 밖에 없다.

특히 이들 회사에 납품했던 하청 중소기업들이 문제다.

정부가 이들 기업들을 보호해주지 못하면 중소기업의 연쇄부도 사태를
막기 어렵다.

하루 아침에 정리될 처지에 놓인 근로자들의 실업문제도 심각하다.

이들이 해당 회사 모기업으로 달려갈 경우 기업들은 또 다른 시련을
겪어야 한다.

한마디로 퇴출기업이 "물귀신"으로 변해 산업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올
것이란 우려다.

정부는 이와 동시에 나머지 기업들의 경쟁력을 어떻게 높여줄 것인지
명확한 정책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구조조정 매물을 소화할 여건을 조성해줘야 한다는게 기업들의
판단이다.

재계는 앞으로는 이런 대형 이벤트 방식을 택하지 말고 해당 은행이
자연스럽게 부실기업을 퇴출시키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보완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다시금 퇴출기업을 선정해 발표하는
제2,제3의 "이벤트"가 이어질 것이라는 게 기업들의 우려다.

그럴 경우 합작 외자유치 부동산 매각 등 기업들이 벌이는 구조조정
노력은 모두 수포로 돌아간다.

정부가 반대를 무릅쓰고 "살생부"를 만든 이유가 없어지고 만다는
것이다.

[ 구조조정 관련제도 개선과제 ]

<>.기업합병

- 이월결손금 승계 : 합병시 피합병법인의 이월결손금을 합병법인이 승계
- 피합병법인 청산 소득과세 : 구조조정을 위한 것일 경우 비과세
- 피합병법인 채무보증 : 피합병법인 계열사 상호지보를 조속히 해소토록
지원
- 기업결합 요건 완화 : 실질적 시장 지배력 중심으로 개선

<>.영업양도및 자산매각

- 양도법인의 특별부가세 : . 특별부가세 감면요건 완화
. 비업무용 부동산 포함
. 불가피한 사업폐지의 경우 추징대상에서 제외
- 법인세 감면 : 구조조정 위한 것일 경우 양도차익에 대한 법인세 50%
감면
- 토지공사의 기업부동산 매입 : 토지공사 매입재원 확대

<>.기업분할

- 특별부가세 : 기업 정체성이 유지되는 분할은 특별부가세 부과대상에서
제외
- 주주총회 결의 문제 : 총주식의 5분의 1 이하인 경우 주주총회 생략 허용

<>.기업퇴출

- 채무동결문제 : 재산보전 처분이 회사정리 개시신청과 동시에 이뤄지는
자동동결제 도입
- 계열기업간 보증채무 : 정리절차중인 기업들의 계열사간 보증채무를 일시
해소
- 정리절차 위한 자금보호 : 정리절차 신청후 자금을 제공하는 투자자 채권
에 우선변제권 보장

< 자료 : 전경련 >

< 권영설 기자 yskw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