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점을 정확히 꿰뚫는 눈"

IBM의 루이스 거스너(56)회장이 이 회사를 살린 최대 무기다.

거스너가 IBM의 회장에 취임한 것은 지난 93년 4월1일.

IBM은 PC혁명에 밀려 신생업체들에게 KO패 당한 상태였다.

IBM경영진들 조차도 포기한 정도였다.

주가는 바닥을 헤매고 있었다.

당시 IBM은 기존체제를 "부정"하는데서 살길을 찾고 있었다.

실패했으니 IBM이 했던 방식과는 정반대의 전략을 쓰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추진한게 기업분할(스핀오프)이었다.

거스너 회장의 전임자 존 에커스는 IBM을 13개로 쪼개고 일부는 IBM에서
떼내는 방안을 추진중이었다.

30여만명의 거대한 몸집으로는 나노(10억분의1)초 단위로 흘러가는
초스피드 시대에 대응할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IBM의 최대강점 사업이던 메인프레임(중대형 컴퓨터)도 포기하기로 했다.

PC시대가 왔는데도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체 메인프레임을 고집했던게
IBM의 최대패인이란 자성에서였다.

거스너 회장은 이 모든 걸 뒤집어 버렸다.

회장 취임 석달도 안된 시점이었다.

반발이 들끓었던 것은 당연하다.

IBM의 패인을 오히려 강화시키자는 역설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우선"IBM은 분할하지 않고 통째로 살린다"는 결론을 내렸다.

분사는 정보산업을 장악할수 있는 IBM의 잠재력을 파괴한다는 판단에서
였다.

쇠퇴의 주범으로 지목되던 IBM의 거대몸집을 거스너는 오히려 미덕으로
본 것이다.

"IBM의 통합능력이야 말로 IBM만의 자산"이란게 그의 지론이었다.

그리고 나서 "메인프레임 사업에 집중 투자한다"고 선언했다.

제아무리 PC시대라도 컴퓨터망을 연결하려면 메인프레임은 필수적이란
생각에서였다.

네트워크 구축에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아무나 할수는 없는 일이다.

"대기업들을 새로운 네트워크의 세계로 끌어들이는 것".

이것이 그의 비전이었다.

기업뿐 아니라 전 산업들을 네트워크로 연결하겠다는 야심이었다.

엄청난 기업정보화 시장에서 IBM이 다시한번 주도권을 잡겠다는 속셈
이었다.

IBM은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더 값싸고 더 첨단제품으로 새롭게 단장시켰다.

이 부문의 지난해 매출은 50억달러.

황금시장인 PC사업도 포기할수 없었다.

그는 PC사업에서 돈을 벌려면 PC제품중 절반이상이 신제품이어야 한다는
점을 간파했다.

이를위해 PC개발센터의 임원들을 모두 재배치했다.

이들을 책상머리에서 끌어내 실제 제품테스트 라인에 투입했다.

팀원들을 오전 7시면 소집됐다.

퇴직한 핵심 기술진들도 다시 불러들였다.

개발과 동시에 영업맨들에게도 영업일선에 나서도록 지시했다.

제품이 나오기도 전이었다.

영업맨들은 "계약을 해놓았다가 제때 납품못하면 신뢰를 잃게 된다"며
우려했다.

거스너의 대답은 "신제품 투입에 성공못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라는
것이었다.

6주후, 새 PC가 시장에 나왔다.

90년대들어 처음으로 IBM이 PC신제품의 시장출시 첫주자가 됐다.

덕분에 그해 시장점유율은 분기마다 1%포인트씩 올라갔다.

그렇다고 거스너가 IBM의 르네상스 운동가는 아니었다.

그는 살려야 할것, 죽여야 할것을 정확히 가려냈다.

거스너회장은 경쟁력없는 PC통신 사업을 떨어냈다.

IBM의 고객 접근법도 뒤바꿔버렸다.

"IBM이 팔아야 할 물건은 문제을 풀수 있는 명쾌한 해결책"이라는게
거스너의 지론.

단지 컴퓨터나 부품만 판다고 끝나는게 아니라는 얘기다.

"CEO들이 원하는건 스피드, 세계화시대에 맞는 경영, 신규고객을 확보하고
생산성 향상을 도와주는 정보화 시스템이다"

"그는 이런 기업고객들의 니즈에 맞춰 서비스를 강화했다.

IBM의 시너지 효과를 높이기 위해 기업쇼핑에도 나섰다.

새로 사들인 사업은 로터스.

94년 당시 매입액은 29억달러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이상의 돈을 벌어들이고 있다.

IBM이 로터스를 인수할 당시 이회사의 그룹웨어(기업용 사내 네트워크
소프트웨어)인 노츠 사용자는 1백60만명이었다.

지금은 무려 2천만명으로 불어났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라이벌 제품인 익스체인지을 압도하는 숫자다.

IBM의 M&A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96년에는 7억4천만달러에 트리볼리를 매입했다.

이회사는 네트워킹 시스템용 소프트웨어 업체.

이 M&A역시 성공작이었다.

현재 IBM의 소프트웨어 매출중 3분의1을 이 소프트웨어로 벌어들이고
있다.

그는 "30년근속"이 평균이던 IBM의 톱 경영층에 외인부대를 수혈했다.

아메리칸익스프레스, RJR, 맥킨지컨설팅사등 자신의 과거직장 친위부대들이
주류를 이뤘다.

IBM맨들과 이들 외인부대의 결합은 이상적이었다.

IMB맨들은 거스너에게 없어서는 안될 기술적 노하우란 실탄을 줬다.

외부에서 온 친위부대는 IBM의 약점인 첨단경영 노하우를 수혈해줬다.

거스너 회장은 인원을 대폭삭감하고 생산을 줄였다.

무려 89억달러어치의 사업을 정리했다.

장기부채는 1백46억달러에서 99억달러로 줄였다.

주가를 올려놓기 위해 1백7억달러를 투입, 자사주 매입을 실시했다.

결과 주가는 1백68달러까지 뛰었다.

거스너회장 취임이후 주가가 4배나 오른 것이다.

싯가도 4백억달러 늘어났다.

97년 매출은 7백85억달러로 최대기록을 세웠다.

거스너는 맥킨지컨설팅 출신이다.

매킨지내에서 ''천재''로 통했다.

기록메이커이기도 했다.

최연소 부서장(28살), 최연소 임원(33살)..

이런 기록경신 행진속에서 그는 고객회사였던 아메리칸 익스프레스로
스카우트 됐다.

당시 직책은 아멕스 부사장겸 신용카드사업부문 사장.

불과 서른다섯살의 나이였다.

이제 거스너 회장은 또다른 기록에 도전하고 있다.

미국 기업사에서 최대의 몰락으로 기록되던 IBM에 최고의 성공신화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IBM이 거스너 회장 덕분에 몰락의 고비는 넘겼지만 아직 충분한건
아니다.

초우량기업이 되기까지는 갈길이 멀다.

그러나 기업레이스에서 사라져 가던 IBM을 선수벤치로 끌어내 경기에
출전할수 있도록 만든것만으로도 그는 이미 기록을 세운 셈이다.

< 노혜령 기자 hro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9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