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광명시 기아자동차 소하리공장.

평소 같으면 하루 1천1백대의 차량을 쏟아내는 공장이다.

그러나 이 공장에선 이미 14일째 자동차가 한대도 생산되지 않고 있다.

지난 1일부터 시작된 전면 파업 탓이다.

멈춰선 공장의 벽은 노조가 붙여놓은 각종 구호들로 가득차 있지만 파업중인
공장치고는 의외로 조용하다.

노조 사무실이 올려다 보이는 "열사의 광장"에 고작 3백여명의 노조원들이
모여 앉아 구호를 외치고 있다.

"3백명이 7천5백명의 밥줄을 끊고 있습니다"

소수의 노조원들이 파업을 장기화시키면서 나머지 조합원들은 고통스럽기만
하다는게 한 조합원의 지적이다.

지난 12일 이 공장 일부 조합원들이 중심이 돼 파업을 중단하자는 서명을
받았다.

서명에는 5천34명의 조합원 가운데 3천5백24명이 참여했다.

68%다.

아산만공장도 8천명 조합원중 1천명만 농성에 참여하는 등 호응도가
소하리와 다를게 없다.

다만 조합원이 공장을 완전 점거하는 등 파업의 강도는 높다.

기아 파업이 장기화되고 있는 것은 회사와 노조가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어서다.

노조가 파업에 들어갈 태세만 보여도 회사가 납작 엎드리던게 그동안
기아의 노사관계.

그러나 관리인으로 온 류종열 회장은 "불합리한 주장은 결코 들어줄 수
없다"며 완강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노조의 주장은 체불임금을 지급하고 3자인수 반대투쟁때 파업을 결근처리
하지 말라는 것.

회사측은 총체적인 손실을 감수해야 하며 불법파업은 법과 사규에 의해
결근처리해야 한다며 맞서고 있다.

그러나 노조가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쟁점은 단체협약에 관한 것이다.

기아의 단협은 회사가 조합원들에 대한 인사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돼 있다.

조합원이 회사에 큰 피해를 입혀도 결코 징계가 불가능하다.

인사위원회가 노사동수로 구성돼 있어서다.

과거 경영진들이 노조에 밀려 합의해준 사항이다.

그런데 단협 만료시한이 이달말로 돼 있다.

노조가 항상 단협을 주물러 온 까닭에 단협 자동연장 조항을 두지 않았던
것이 오히려 노조의 목을 조이고 있는 셈이다.

양쪽의 주장이 첨예하게 대립되다보니 회사의 파업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달들어 지난 14일까지 매출손실은 1천4백12억원에 이른다.

유일한 돌파구인 수출도 극히 저조해 이달 목표대수 3만4천4백80대중
2천4백8대만 선적됐다.

일부 지역에는 계약이행이 불가능해 막대한 위약금을 물어야 할 처지다.

모처럼 월드컵 관련 판촉으로 내수 계약도 늘었지만 노조가 출고를 저지하고
있다.

포드와의 협상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여기다 기아에 부품을 납품해오던 협력업체들은 자금사정이 더욱 악화돼
대량 부도위기에 직면해있다.

"파업 장기화가 사형선고라는 것을 왜 모르는지..."

소하리 공장에서 만난 한 근로자의 푸념이다.

< 소하리공장=윤성민 기자 smy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1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