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6일 미국의 현충일인 메모리얼 데이 사흘 연휴를 끝내고 출근하는
미국 투자자들은 고민에 빠졌다.

지난 8년동안 오르기만 하던 주식을 이제는 팔아 중간이익을 챙길 것인지,
아니면 더 올라갈 가능성이 있으니 그냥 계속 붙잡고 있어야 할지를 선택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사흘 연휴동안 세계 원자재 가격은 큰 폭으로 떨어졌다.

옥수수 콩 밀 모두 근래 최저를 기록했는가 하면 금 플라티늄 구리 값도
내렸다.

원유도 배럴당 14달러대를 위협하는 동반 폭락세를 나타냈다.

상품가격 하락은 해당품목 수출국들에 큰 타격을 안겨주고 있다.

구리가 유일한 수출품인 칠레는 이미 국가예산을 다시 짜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원유공급국인 러시아 경제는 형언하기 힘든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러시아 주식은 올들어 40%나 폭락했다.

러시아의 외환보유고는 보유금 44억달러어치를 포함해 고작 1백55억달러로
줄었다.

탄광 노동자들이 밀린 봉급을 내놓으라고 시작한 파업은 시베리아 횡단철도
의 운행을 한동안 중단시켰다.

아시아로 팔려나가던 옥수수 콩 밀 등의 곡물류가 기록적으로 하한가를
치자 미국의 농민들이 생산축소를 준비중이라는 설도 나돌고 있다.

브라질 호주 등의 농민들은 작년에도 큰 손해를 보았었다.

러시아의 불안은 곧바로 동구권을 통째로 위험으로 몰아넣게 된다.

러시아와 자본거래가 많은 남미국가들의 주식과 통화도 일제히 약세를
보였었다.

89년 12월부터 시작된 일본의 경제불황은 드디어 엔화를 달러당 1백40엔
근처로까지 내몰고 있다.

벌써 달러당 1백60엔이나 1백80엔이라는 성급한 전망이 나오는가 하면
2백엔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분석까지 거론되고 있다.

엔화 폭락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일본은 지난 8년간 주가하락으로 3백조엔,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8백조엔
등 모두 1천1백조엔의 국부를 날렸다.

중소기업 몰락과 금융기관 파탄도 줄을 잇고 있다.

수하르토 대통령의 하야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 정국은 아직도 혼미를
더해가고 있으며, 홍콩에서는 중국반환 1주년을 넘기기가 무섭게 민주
인사들이 의회를 점령할만큼 민생고가 심해지고 있다.

홍콩의 1.4분기 성장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아시아 발 경제공황이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중국이 홍콩달러와 자국
위안(원)화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쓰다 보니 관광객은 실종했고, 국제경쟁력을
잃은 홍콩은 거덜나고 말았다.

국제 상품가격의 폭락, 거듭되는 아시아 경제의 혼미, 일본 엔화의 기록적인
절하는 미국 투자자들의 심리를 위축시킬 수 밖에 없다.

그동안 치솟기만 하던 다우존스 지수는 메모리얼 데이 다음날 1백50포인트나
떨어졌고 다음날인 27일에도 개장하자마자 주가가 곤두박질 쳐 한때 1백75
포인트까지 내려가기도 했다.

같은 날 옥수수 콩 밀 모두가 또 다시 급락했다.

러시아 주식시장은 하루 사이에 10%나 떨어졌고 루블화 하락을 막기위해
연60%인 국채 이자율을 1백50%까지 올려야만 했다.

지난달 26일과 27일은 뉴욕 월가의 투자자들은 물론 세계전체가 숨죽이고
쳐다보는 가운데 숨가쁘게 지나갔다.

드디어 세계 대공황이 다가오고 있는 것인가.

물론 아직까지는 반신반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국 연방준비은행이 금리를 올리지 않고 있고, 러시아와 아시아 등 세계
도처에서 불안을 견디지 못한 달러가 계속 유입되는한 미국증시는 앞으로도
올라갈 것이라고 낙관하는 사람들도 많다.

특히 지난 4월1일자로 단행된 일본의 외환자유화 때문에 매주 40억달러씩이
나 되는 일본 돈이 미국시장으로 계속 들어오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미 IBM 인텔 컴팩 보잉 등이 공표했듯이 아시아경제 불황 때문에
미국의 수출고는 지난 분기동안 40%나 격감했고 상당량의 제품이 재고로
쌓이고 있다.

그동안 적정기준으로 보아왔던 12대 1의 주가수익률이 이제는 30대 1에서
45대 1까지 벌어지고 있다.

그만큼 미국기업의 영업이익이 급감했는 데도 불구하고 주가는 비정상적으로
올라가 주식 투자자는 계속 늘어나는 현상을 초래했었다.

그러나 언제까지 이런 비정상적인 현상이 계속되기만 할 것인가.

버블의 우려가 있다는 얘기다.

이제는 세계적인 대공황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기술적 분석가들의 지론에
귀를 기울일 때가 됐다.

그들은 지금의 상황이 바로 1929년에 있었던 미국의 대공황 때와 비슷하다고
한다.

당시 대공황은 8년동안 이어진 주식시장의 이상과열에서부터 시작됐다.

일본의 상황이 우려되는 것도 그래서다.

89년12월 피크에 이르렀던 일본 주식시장도 사실은 81년말부터 만8년의
주식가격 앙등이 있었으며, 1912년 일본의 쇼와공황 역시 8년에 걸친 주가
상승 끝에 일어났다.

금년들어 적지않은 주식투자 전문가들이 시장을 떠나고 있다.

일부 투자증권 회사의 주인들은 보유주식의 전부 또는 일부를 현금화하는
것은 물론, 증권회사 자체를 처분한다고 나서 주목을 끌고 있다.

그간 아시아 위기와 국제화 덕분에 값싼 소비제품 수입이 늘어 소비자물가
지수는 전혀 올라가지 않았지만 주가와 부동산 등의 자산 인플레이션은 이미
우려할만한 수준으로까지 올랐다.

만일 미국이 과열경기를 잡기위해 금리를 올리기라도 하는 날이면 상황은
불보듯 훤하다.

미국 연방준비은행 이사회에서도 금리인상의 부작용을 우려해 금리인상을
보류했었다.

곧바로 주가붕락과 세계대공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세계 대공황이 온다면 결코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다.

1912년의 일본 쇼와공황은 결국 만주사변으로 이어졌고, 1929년의 미국
대공황은 1933년에 다시 밑바닥을 친 다음 계속 지리멸렬하다가 끝내
2차대전으로까지 연결됐다.

89년에 시작된 일본의 경제불황이 만 8년이 되도록 지지부진한 것은 한번
시작된 공황은 완전한 구조재조정없이는 10년 정도 기간으로는 끝나지 않는
다는 것을 웅변해주고 있다.

지금 세계전체는 대공황 전야에 와 있다.

이제 경제 불황은 우리만의 것이 아니다.

눈 앞에 닥친 세계 대공황에서 누가 살아 남느냐 하는 것은 누가 먼저
대대적인 구조 재조정을 이뤄내느냐에 달려 있다.

이제 더 이상 구조조정이 먼저냐, 대량 실업이 먼저냐로 우물쭈물 지체할
시간이 없다.

하루 바삐 퇴출대상과 살아남을 대상을 구별해야 한다.

세계 대공황을 알리는 전야에 "최후 심판론(Doomsday Theory)"이 있다는
역사적 사실을 되새겨야 할 순간이다.

< leet@winstim.com >

[ 약력 ]

<>1940년 함남 함흥 출생
<>서울대 법과대 법학과 졸업
<>뉴욕 로스쿨 졸업
<>국제변호사
미윈스롭 법률법인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