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극복한 '세계의 CEO'] (1) GE 사령탑 잭 웰치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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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조정''이 벼랑끝에 선 한국경제의 화두로 떠올랐다.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한국기업들.
이들이 구조를 완전히 뜯어고치는 대수술에 성공할지 여부는 IMF 탈출과
직결돼 있다.
구조조정 성공의 열쇠는 어디에 있을까.
바로 ''최고경영자''(CEO)가 쥐고 있다.
톱이 어떤 의지로, 어떤 처방을 내리는가에 따라 그 성패가 달려 있다.
세계에는 침몰직전에서 회생한 거대기업들이 많다.
이들을 구해낸 일등공신 역시 CEO들이다.
패색이 짙어가던 기업을 초우량기업의 대열로 끌어올린 경영의 귀재들.
그들의 성공비법을 세계적인 컨설팅업체 AT커니와 공동으로 해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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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의 반란자"
잭웰치 GE(62) 회장의 수많은 별명중 하나다.
그러나 이 말속에는 별명이상의 뜻이 있다.
웰치를 이시대 최고의 경영자로 만든 성공비법이기 때문이다.
GE호의 항해루트를 "전통"대신"수익성"으로 바꾼 과단성이 없었던들 GE는
21세기 문턱에서 공룡으로 멸종의 길을 걸었으리란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웰치 회장의 트레이드 마크가 돼버린"1등 또는 2등 전략"도 일종의 반란
이었다.
81년 취임직후 그가 "1,2등이 아닌 사업은 그만두라"고 외치고 나섰을때
GE안팎의 반응은 냉랭했다.
당시 GE는 꾸준히 성장하는 재계의 모범생이었다.
3백50개 사업체중 70%는 이미 시장 1,2위를 다투고 있었다.
그러나 웰치의 초점은 현재가 아니었다.
미래에 꽂혀 있었다.
10년후에 1등을 차지할 고성장, 고수익 사업분야.
이것이 "1,2등 전략"의 핵심이었다.
당시 GE의 수익중 절반정도가 저수익, 저성장의 전통적인 사업분야에서
나왔다.
웰치는 GE가 21세기에도 우량기업으로 살아남으려면 고부가가치의 하이테크,
서비스업 중심으로 뜯어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업재편의 설계도는 "3원"이었다.
첫째원은 GE의 핵심사업, 둘째원은 하이테크산업, 셋째원은 서비스산업
이었다.
이 3원안에 들어간 사업은 총 12개.
향후 10년안에 "승리"하리라고 점친 사업이었다.
웰치 회장은 "3원"이란 설계도에 맞춰 과감히 저부가가치 사업을 잘라
나갔다.
그 결과 1백50여개에 달하던 사업부문은 12개로 집중됐다.
그중에서도 87년 GE가 소형가전사업을 톰슨사의 의료기기 사업과 맞바꾼
것은 최대 논란거리였다.
당시 이 사업은 연간매출 32억달러, 시장점유율 25%를 차지하는 간판사업
이었다.
무엇보다도 축음기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 창립한 GE에서 오디오, TV,
VTR 등 소형가전사업은 신성불가침의 "성역"이었다.
웰치가 이 사업을 매각키로 결정하자 "미국의 유산을 팔아넘기는 매국행위"
라는 비판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웰치의 경영사전에 "전통"이란 단어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수익성이었다.
이런 웰치의 안목은 정확했다.
사업재편 덕분에 수익성은 크게 올랐다.
지난해 GE의 매출은 8백93억달러.
81년(2백72억달러)보다 3배정도 늘어났다.
그러나 순익은 82억달러로 81년(16억5천만달러)보다 5배 뛰었다.
현재 GE주식의 싯가총액은 2천4백60억달러로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
GE의 얼굴도 딴판으로 바뀌었다.
"가전업체"라는 수식어는 이제 더이상 GE에 어울리지 않게 됐다.
가전부문의 매출 비중은 불과 7.5%.
대신 금융부문은 총 매출의 40%이상을 차지하는 주력업종이 돼버렸다.
웰치는 "관료시스템"에도 메스를 댔다.
1,2등 전략의 성공에는 새 하드웨어(사업재구축)를 효율적으로 돌릴 첨단
소프트웨어(민첩한 조직)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80년대초 GE직원 40만명 가운데 2만5천명이 관리자였다.
이중 상급관리자는 5백명, 부사장 이상은 1백30명이었다.
서류하나 결재 맡으려면 9~11단계를 거쳐야 했다.
웰치는 조직축소 역시 반란을 일으키듯, 과감하게 단행했다.
웰치가 맨먼저 손댄 곳은 GE의 자존심으로 불리던 본사의 전략기획팀.
웰치 회장은 4백명에 달하는 이 팀을 아예 해체해 버렸다.
전략기획 기능은 생산현장이나 각 계열사등 현지에서 추진토록 이관했다.
경영진도 예외없는 수술대상이었다.
81년 웰치회장 취임당시 각 사업부문과 웰치 사이에는 3개 계층이 있었다.
6명의 그룹임원, 그위에 6명의 섹터임원, 그위에 2명의 부사장이었다.
웰치는 이들이 자연퇴직하거나 회사를 옮기기까지 4년을 기다렸다.
그리고 3개층을 완전히 없애버렸다.
12개 전사업은 웰치와 부회장 에드워드 후드가 나눠 직접 관할했다.
중간관리자들의 숫자도 대폭 줄였다.
당시 중간관리자의 적정 부하직원수는 5~8명이란게 통념이었다.
웰치는 15명으로 봤다.
그결과 결재단계는 4~6개로 줄었다.
웰치가 취임 첫 5년간 잘라낸 인원은 13만명.
GE 전체종업원의 25%에 해당했다.
30년대 대공황때보다도 큰 숫자였다.
GE 직원수는 이제 81년의 절반수준인 24만명으로 줄었다.
웰치는 퇴임을 2년 앞두고 있다.
GE호의 21세기 항해키는 누가 쥘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누가되든 혁명적 개혁을 통해 이뤄낸 웰치의 "작은경영, 큰 이익"을
뛰어넘기는 어려울것 같다.
< 노혜령 기자 hro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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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T커니 어떤 회사인가
AT커니는 지난 26년 세워진 세계 최초의 컨설팅업체다.
앤드루 토머스와 OJ맥킨지가 공동설립한 AT커니 맥킨지사가 모태였다.
그후 맥킨지와 결별, AT커니로 이름을 바꿨다.
AT커니는 그동안 GM, 도요타, US스틸 등 수많은 다국적 기업들을 컨설팅해
왔다.
그중에서도 아이아코카 회장을 도와 "크라이슬러의 회생드라마"를 연출했던
것은 AT커니의 진가를 보여준 사례였다.
전세계 70여개국에 4천명이상의 컨설턴트를 보유하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5일자 ).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한국기업들.
이들이 구조를 완전히 뜯어고치는 대수술에 성공할지 여부는 IMF 탈출과
직결돼 있다.
구조조정 성공의 열쇠는 어디에 있을까.
바로 ''최고경영자''(CEO)가 쥐고 있다.
톱이 어떤 의지로, 어떤 처방을 내리는가에 따라 그 성패가 달려 있다.
세계에는 침몰직전에서 회생한 거대기업들이 많다.
이들을 구해낸 일등공신 역시 CEO들이다.
패색이 짙어가던 기업을 초우량기업의 대열로 끌어올린 경영의 귀재들.
그들의 성공비법을 세계적인 컨설팅업체 AT커니와 공동으로 해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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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의 반란자"
잭웰치 GE(62) 회장의 수많은 별명중 하나다.
그러나 이 말속에는 별명이상의 뜻이 있다.
웰치를 이시대 최고의 경영자로 만든 성공비법이기 때문이다.
GE호의 항해루트를 "전통"대신"수익성"으로 바꾼 과단성이 없었던들 GE는
21세기 문턱에서 공룡으로 멸종의 길을 걸었으리란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웰치 회장의 트레이드 마크가 돼버린"1등 또는 2등 전략"도 일종의 반란
이었다.
81년 취임직후 그가 "1,2등이 아닌 사업은 그만두라"고 외치고 나섰을때
GE안팎의 반응은 냉랭했다.
당시 GE는 꾸준히 성장하는 재계의 모범생이었다.
3백50개 사업체중 70%는 이미 시장 1,2위를 다투고 있었다.
그러나 웰치의 초점은 현재가 아니었다.
미래에 꽂혀 있었다.
10년후에 1등을 차지할 고성장, 고수익 사업분야.
이것이 "1,2등 전략"의 핵심이었다.
당시 GE의 수익중 절반정도가 저수익, 저성장의 전통적인 사업분야에서
나왔다.
웰치는 GE가 21세기에도 우량기업으로 살아남으려면 고부가가치의 하이테크,
서비스업 중심으로 뜯어고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업재편의 설계도는 "3원"이었다.
첫째원은 GE의 핵심사업, 둘째원은 하이테크산업, 셋째원은 서비스산업
이었다.
이 3원안에 들어간 사업은 총 12개.
향후 10년안에 "승리"하리라고 점친 사업이었다.
웰치 회장은 "3원"이란 설계도에 맞춰 과감히 저부가가치 사업을 잘라
나갔다.
그 결과 1백50여개에 달하던 사업부문은 12개로 집중됐다.
그중에서도 87년 GE가 소형가전사업을 톰슨사의 의료기기 사업과 맞바꾼
것은 최대 논란거리였다.
당시 이 사업은 연간매출 32억달러, 시장점유율 25%를 차지하는 간판사업
이었다.
무엇보다도 축음기의 발명가 토머스 에디슨이 창립한 GE에서 오디오, TV,
VTR 등 소형가전사업은 신성불가침의 "성역"이었다.
웰치가 이 사업을 매각키로 결정하자 "미국의 유산을 팔아넘기는 매국행위"
라는 비판까지 등장했다.
그러나 웰치의 경영사전에 "전통"이란 단어는 없었다.
중요한 것은 오로지 수익성이었다.
이런 웰치의 안목은 정확했다.
사업재편 덕분에 수익성은 크게 올랐다.
지난해 GE의 매출은 8백93억달러.
81년(2백72억달러)보다 3배정도 늘어났다.
그러나 순익은 82억달러로 81년(16억5천만달러)보다 5배 뛰었다.
현재 GE주식의 싯가총액은 2천4백60억달러로 세계 최고를 자랑하고 있다.
GE의 얼굴도 딴판으로 바뀌었다.
"가전업체"라는 수식어는 이제 더이상 GE에 어울리지 않게 됐다.
가전부문의 매출 비중은 불과 7.5%.
대신 금융부문은 총 매출의 40%이상을 차지하는 주력업종이 돼버렸다.
웰치는 "관료시스템"에도 메스를 댔다.
1,2등 전략의 성공에는 새 하드웨어(사업재구축)를 효율적으로 돌릴 첨단
소프트웨어(민첩한 조직)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80년대초 GE직원 40만명 가운데 2만5천명이 관리자였다.
이중 상급관리자는 5백명, 부사장 이상은 1백30명이었다.
서류하나 결재 맡으려면 9~11단계를 거쳐야 했다.
웰치는 조직축소 역시 반란을 일으키듯, 과감하게 단행했다.
웰치가 맨먼저 손댄 곳은 GE의 자존심으로 불리던 본사의 전략기획팀.
웰치 회장은 4백명에 달하는 이 팀을 아예 해체해 버렸다.
전략기획 기능은 생산현장이나 각 계열사등 현지에서 추진토록 이관했다.
경영진도 예외없는 수술대상이었다.
81년 웰치회장 취임당시 각 사업부문과 웰치 사이에는 3개 계층이 있었다.
6명의 그룹임원, 그위에 6명의 섹터임원, 그위에 2명의 부사장이었다.
웰치는 이들이 자연퇴직하거나 회사를 옮기기까지 4년을 기다렸다.
그리고 3개층을 완전히 없애버렸다.
12개 전사업은 웰치와 부회장 에드워드 후드가 나눠 직접 관할했다.
중간관리자들의 숫자도 대폭 줄였다.
당시 중간관리자의 적정 부하직원수는 5~8명이란게 통념이었다.
웰치는 15명으로 봤다.
그결과 결재단계는 4~6개로 줄었다.
웰치가 취임 첫 5년간 잘라낸 인원은 13만명.
GE 전체종업원의 25%에 해당했다.
30년대 대공황때보다도 큰 숫자였다.
GE 직원수는 이제 81년의 절반수준인 24만명으로 줄었다.
웰치는 퇴임을 2년 앞두고 있다.
GE호의 21세기 항해키는 누가 쥘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그러나 누가되든 혁명적 개혁을 통해 이뤄낸 웰치의 "작은경영, 큰 이익"을
뛰어넘기는 어려울것 같다.
< 노혜령 기자 hro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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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T커니 어떤 회사인가
AT커니는 지난 26년 세워진 세계 최초의 컨설팅업체다.
앤드루 토머스와 OJ맥킨지가 공동설립한 AT커니 맥킨지사가 모태였다.
그후 맥킨지와 결별, AT커니로 이름을 바꿨다.
AT커니는 그동안 GM, 도요타, US스틸 등 수많은 다국적 기업들을 컨설팅해
왔다.
그중에서도 아이아코카 회장을 도와 "크라이슬러의 회생드라마"를 연출했던
것은 AT커니의 진가를 보여준 사례였다.
전세계 70여개국에 4천명이상의 컨설턴트를 보유하고 있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