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를 많이 주재하고 또한 참여도 하는 처지지만 그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경우가 많다.

회의를 주재하는 입장에서는 회의에 참여한 사람들의 무거운 침묵에 일종의
배신감을 느끼는 때가 있다.

또 회의에 참여하는 입장에서는 회의 주재자들의 속이 훤히 들여다 보이는
진행방식이나 장광설에 비위가 상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토론능력의 한계는 조선시대의 당쟁사에도 잘 나타나
있다.

그러한 대물림 탓인지 오늘날에도 각종 회의에서 진지한 토론을 통한
바람직한 결론도출의 예가 그리 많은 것 같지 않다.

회의는 본래 참가자들의 중지를 모으는 과정이다.

때문에 회의 주제에 대한 분명한 인식을 바탕으로 정리된 표현력, 상대방
존중, 그리고 상당한 인내심이 요구된다.

그렇지 못하면 공허한 말잔치만 되거나 회의주체의 의사결정의 합법성을
포장하는 기구로 이용당할 뿐이다.

우리가 그동안 보고 겪어온 많은 회의들, 즉 나라의 정치를 논하는
회의들에서부터 동네 반상회에 이르기까지 상당수 회의에서 올바른 회의
문화가 성숙되지 못한데서 오는 비효율과 낭비는 엄청나다고 본다.

회의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선 구성원들 모두 회의문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협력해야 하겠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회의 주재자의 회의진행
기술이 아닐까.

좀 엉뚱한 발언을 하는 사람들의 인격도 보호해야하며, 약삭빠른 과묵형
처세주의자들을 참여시킬 수 있어야 하며, 회의의 흐름을 주도하되 지배를
해서는 아니될 것이다.

다양한 견해와 감정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원칙과 이성에 입각한 논쟁을
한다는 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고도의 경험적 집단훈련에 의하여
성숙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성숙한 회의문화가 가져올 사회 전체적인 계량적.비계량적 효과는 엄청나게
클 것이다.

특히 요즈음 같이 사회 여러분야에 걸쳐 개혁의 물결이 거세게 일고 있는
때일수록 효율적인 회의운영이 절실히 요망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