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시대 생계범죄 증가 ]]

"한국형 장발장"이 무더기로 쏟아지고 있다.

극도의 경기불황이 평범한 시민들조차 빵 한조각 때문에 수십년간
감옥살이를 한 장발장의 상황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

생계형 범죄증가는 국제통화기금(IMF)체제후 한국사회의 불안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지난 4월 절도혐의로 서울 양천경찰서에 구속된 김모(26)씨.

김씨는 고물상에서 알루미늄새시 30kg과 고철 1백kg(시가 36만원)을 훔친
혐의로 구속됐다.

직장에서 해고된후 생후 6개월된 아들 분유값을 마련할 길이 없어
재활용품을 모으러 다니다가 고철덩어리를 보고 갑자기 욕심이 생겼다는게
김씨의 범죄동기.

이처럼 생활고를 못이겨 저지르는 범죄는 작년말 이후 급증하고 있다.

지난 3월 절도혐의로 불구속 입건된 주부 안모(26.서울 도봉구 방학동)씨.

안씨는 집근처 슈퍼마켓에서 국수와 참기름 등 1만7천여원어치의 식료품을
훔치다 주인에게 들켰다.

막노동을 하는 시아버지와 남편이 일거리가 없어 수입이 끊긴데다 현재
임신 8개월이라 먹고 싶은 것이 많아 남의 물건에 손댔다는게 안씨의 호소.

자녀 유치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빈집털이에 나선 실직자, 식량이 없어
가게에서 봉지쌀을 훔친 가장, 빚독촉에 시달리자 신생아를 유괴한 임신부.

모두 절박한 상태에서 저지른 범죄다.

심지어 주차차량의 기름을 빼가거나 공사현장 전깃줄이나 구리전선을
도난당하는 사건도 빈발하고 있다.

유엔아동기금(UNICEF) 모금함이 털리는가 하면 공공건물에 비치해 놓은
휴지 메모지 볼펜 등도 없어진다.

공중전화박스도 수난을 당하고 있다.

경제위기의 소용돌이 속에 허우적거리며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사람에게
장밋빛 환상을 심어주며 사기를 치는 경제사범도 늘고 있다.

명예퇴직자의 퇴직금을 노린 취업사기나 다단계 판매사기, 자금난에
쪼달리는 중소기업인을 두번 울리는 대출사기가 판을 치고 있다.

사회학자들에 따르면 한 사회에서 실업률이 1% 늘어나면 범죄는 보통
5%이상 증가한다.

만약 올해 실업률이 9%를 넘어 실업자가 2백만명에 이르면 범죄는 작년보다
35%이상 늘어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럴 경우 치안부재의 위기상황을 맞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처럼 범죄가 급증하다보니 가볍게 웃어넘길 수 있는 사소한 문제도
폭력이나 살인으로 연결되는 등 인심마저 흉흉해지고 있다.

불리한 인사고과 때문에 해고됐다며 상사에게 폭력을 휘둘러 구속된 30대
회사원.

임금체불로 다투다 사장에게 흉기를 찔러 숨지게 한 20대 공원.

빚독촉을 해온 사채업자를 유인해 생매장시킨 40대 자영업자 등이 이런
경우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IMF직후인 지난해 12월부터 올 4월까지 절도와
강도로 구속된 사람은 전년 같은 기간보다 각각 23.8%와 38.3%가 늘었다.

폭력사범은 11%, 수표부도사범은 10%가 증가했다.

이에 따라 전국의 교도소도 이미 포화상태다.

현재 전국 교도소에 수감된 범죄자는 7만여명으로 적정수용인원 5만7천명을
훨씬 초과해 미어터지고 있다.

감방 1평당 2.24명꼴로 1백명 수용한도 시설에 1백24명이 수감돼 있다.

영등포와 인천구치소, 대구교도소는 1평에 3명이상 수감돼 최악의 상황이다.

최근에는 "숙식"을 해결하기 위해 자포자기 심정으로 범죄를 저지른뒤
이 곳을 찾는 사람도 크게 늘었다는게 교정관계자의 얘기다.

신경정신과 전문의 이나미(37)박사는 "정리해고나 임금삭감 등으로
상실감에 빠지거나 회사 등 조직으로부터 이탈된 경우 특히 준법정신이
약해진다"며 "여기다 강요된 고통분담으로 사회에 대한 신뢰감마저 잃으면
걷잡을 수 없는 돌출행동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이심기 기자 sglee@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6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