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우리 마음 도로 찾기 .. 이오덕 <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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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젊은이들을 만나는 것이 참 거북하고 바로 말해서 싫어졌다.
무엇보다도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괴상한 글말이고 남의 나라
말법이라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이 여간 괴로운게 아니다.
몇가지 보기를 들면 "어제 거기 갔는데"할 것을 "어제 거기 갔었는데"한다.
"그런 책을 읽으면"할 것을 "그런 책을 접하면"한다.
"돈이 없어서요"할 것도 "경제적으로 애로가 많아서요"한다.
"말을 한다"고 하는 사람도 없고 모조리 "언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방안에 마주 앉아서 주고받는 말이 이러니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설 같은
것을 하게 되면 참으로 그 말이란 것이 가관이어서 저 사람이 내 동족인가
하고 놀라게도 된다.
말이 아니고 글이 되면 더 기가 막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 의하여...되어지는" "...에 있어서"따위는
벌써 입말까지 더럽혀 놓은 지식인들의 병든 글 버릇이 되었지만 그밖에
별의별 괴상한 말과 말법을 마구잡이로 쓴다.
그래서 신문이고 잡지고 낱권책이고 온갖 광고문과 상품 설명문이,
교과서와 우리 말 사전까지 온통 오염된 말로 넘쳐 있다.
앞으로는 논술 세대가 사회에 쏟아져 나와 우리 말은 더한층 어지럽게
되고 사나운 꼴로 될 것 같다.
손발로 몸으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면서 입으로, 병든 글말로 온갖
이론을 늘어놓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꽉 차게 된다 싶으니
소름이 끼친다.
오늘날 우리가 빠져있는 이 경제 난국의 근본 원인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기로는 너무나 훤하다.
제 나라 말을 멸시하고 남의 나라 말과 글을 언제나 하늘같이 여겨서
떠받들어 온 바로 이것이다.
제 나라 말이 보잘것없으니 그 말로 살아가는 백성들이 못나 보이고 그
삶이 부끄럽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제 것은 덮어 감추고 버리고 짓밟는다.
속은 텅 비었는데 겉만 꾸미고 없어도 있는 척, 몰라도 아는 척한다.
학교 공부를 하지 않고 땀 흘려 일하면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문맹자가 되고 바보가 되어 사람 대접 못 받지만 방안에서 공부만 하면
장땡이가 되니 온 나라 사람들이 교육열에 들뜨고 미칠 수밖에 없다.
이래서 우리들의 삶은 속절없이 허풍으로 되고 말았다.
정치도 산업도 경제도 교육도 그밖에 어떤 것도 허풍 아닌 것이 없는데
나라 살림이 거덜나지 않고 어쩌겠는가.
요즘 민족을 개조해야 한다느니, 국민성을 바꿔야 한다느니 하는 소리가
높다.
그런데 나는 이런 말과는 아주 다르게, 도리어 우리 민족의 본성을 찾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민족을 개조한다, 국민성을 바꿔야 한다고 하면 "역시 우리는 못난
족속이야. 아무래도 우리는 힘센 이웃 나라에 붙어 살든지, 미국의 한 주가
되는 수밖에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테니까.
우리 민족은 본래 이렇지는 않았다.
산과 들에서 땀 흘려 일하면서 착하고 어질게 살았다.
서로 도우면서 먹는 것도 나누고 그야말로 법 없이도 살았다.
방안에서 외국글만 읽던 사람들이 백성들 위에 올라앉아 피땀으로 거둔
열매를 모질게 앗아갔지만 백성들은 잘도 견디면서 우리 겨레의 삶과 말을
이어 왔다.
땅을 갈아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짐을 져 나르면서 자연과 어울려 서로
정을 나누고 노래와 이야기로 고된 농사일을 즐겁고 아름다운 삶으로
만들었다.
우리 말, 우리 정서, 우리 얼은 이런 농민들의 삶 속에 있었고 이것이
바로 우리 민족성인 것이다.
그런데 남을 속이고 꾀를 부리면서 일은 하지 않고 남에게 기대어 살고
싶어한 것은 우리 마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밖에서 들어온 것, 장사꾼들의 것이었고 방안에서 책만 읽은
사람들이 어려운 외국글로 권위를 세우면서 가지게 되기도 한 정신상태였다.
없어도 있는 척, 몰라도 아는 척하는 것이 다 그렇다.
더구나 오늘날 우리 국민들이 도시 산업 사회에서 이기주의로 살아가는 것,
수단방법 안가리고 나만 기분 좋게 살면 그만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교육의 결과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학교에서 입신출세를 목표로 하는, 서로 잡아먹는
교육을 해서 온 국민의 인간성과 민족성을 다 버려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살아나는 길은 잘못된 교육의 해독에서 벗어나고 모질고
능글맞은 정치가 온갖 수단으로 우리 정신을 마취해 놓은 상태에서 깨어나
민족의 본성을 도로 찾아 가지는 길밖에 없다.
여기서 교육 개혁의 문제가 된다.
어린 아이들이 교실에서 민주주의를 몸으로 겪도록 하게 하지 않고 민주
사회를 만들 수는 절대로 없다.
어린 아이들에게 깨끗한 우리 말을 이어주지 않고 우리 겨레 아이로 키울
수는 결코 없다.
교육 개혁 없이는 어떤 정책도 임시 땜질밖에 안된다.
다행하게도 새 정부에서 교육을 크게 개혁하겠다니 여간 반갑지 않다.
장관이 전문가가 아니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는데 전문가가 아니기에
개혁을 더 잘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교육행정을 망쳐 놓은 것이 모두 전문가들이었으니까.
제발 우리 교육이 그저 상식 정도라도 됐으면 얼마나 좋겠나.
아이들 잡지 말고 아이들에게 깨끗한 겨레말을 이어주는 교육 말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5일자 ).
무엇보다도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괴상한 글말이고 남의 나라
말법이라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이 여간 괴로운게 아니다.
몇가지 보기를 들면 "어제 거기 갔는데"할 것을 "어제 거기 갔었는데"한다.
"그런 책을 읽으면"할 것을 "그런 책을 접하면"한다.
"돈이 없어서요"할 것도 "경제적으로 애로가 많아서요"한다.
"말을 한다"고 하는 사람도 없고 모조리 "언어를 사용한다"고 한다.
방안에 마주 앉아서 주고받는 말이 이러니 많은 사람들 앞에서 연설 같은
것을 하게 되면 참으로 그 말이란 것이 가관이어서 저 사람이 내 동족인가
하고 놀라게도 된다.
말이 아니고 글이 되면 더 기가 막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 의하여...되어지는" "...에 있어서"따위는
벌써 입말까지 더럽혀 놓은 지식인들의 병든 글 버릇이 되었지만 그밖에
별의별 괴상한 말과 말법을 마구잡이로 쓴다.
그래서 신문이고 잡지고 낱권책이고 온갖 광고문과 상품 설명문이,
교과서와 우리 말 사전까지 온통 오염된 말로 넘쳐 있다.
앞으로는 논술 세대가 사회에 쏟아져 나와 우리 말은 더한층 어지럽게
되고 사나운 꼴로 될 것 같다.
손발로 몸으로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면서 입으로, 병든 글말로 온갖
이론을 늘어놓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꽉 차게 된다 싶으니
소름이 끼친다.
오늘날 우리가 빠져있는 이 경제 난국의 근본 원인이 어디 있는가?
내가 보기로는 너무나 훤하다.
제 나라 말을 멸시하고 남의 나라 말과 글을 언제나 하늘같이 여겨서
떠받들어 온 바로 이것이다.
제 나라 말이 보잘것없으니 그 말로 살아가는 백성들이 못나 보이고 그
삶이 부끄럽다.
그래서 무엇이든지 제 것은 덮어 감추고 버리고 짓밟는다.
속은 텅 비었는데 겉만 꾸미고 없어도 있는 척, 몰라도 아는 척한다.
학교 공부를 하지 않고 땀 흘려 일하면서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문맹자가 되고 바보가 되어 사람 대접 못 받지만 방안에서 공부만 하면
장땡이가 되니 온 나라 사람들이 교육열에 들뜨고 미칠 수밖에 없다.
이래서 우리들의 삶은 속절없이 허풍으로 되고 말았다.
정치도 산업도 경제도 교육도 그밖에 어떤 것도 허풍 아닌 것이 없는데
나라 살림이 거덜나지 않고 어쩌겠는가.
요즘 민족을 개조해야 한다느니, 국민성을 바꿔야 한다느니 하는 소리가
높다.
그런데 나는 이런 말과는 아주 다르게, 도리어 우리 민족의 본성을 찾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민족을 개조한다, 국민성을 바꿔야 한다고 하면 "역시 우리는 못난
족속이야. 아무래도 우리는 힘센 이웃 나라에 붙어 살든지, 미국의 한 주가
되는 수밖에 없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테니까.
우리 민족은 본래 이렇지는 않았다.
산과 들에서 땀 흘려 일하면서 착하고 어질게 살았다.
서로 도우면서 먹는 것도 나누고 그야말로 법 없이도 살았다.
방안에서 외국글만 읽던 사람들이 백성들 위에 올라앉아 피땀으로 거둔
열매를 모질게 앗아갔지만 백성들은 잘도 견디면서 우리 겨레의 삶과 말을
이어 왔다.
땅을 갈아 씨를 뿌리고 김을 매고 짐을 져 나르면서 자연과 어울려 서로
정을 나누고 노래와 이야기로 고된 농사일을 즐겁고 아름다운 삶으로
만들었다.
우리 말, 우리 정서, 우리 얼은 이런 농민들의 삶 속에 있었고 이것이
바로 우리 민족성인 것이다.
그런데 남을 속이고 꾀를 부리면서 일은 하지 않고 남에게 기대어 살고
싶어한 것은 우리 마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밖에서 들어온 것, 장사꾼들의 것이었고 방안에서 책만 읽은
사람들이 어려운 외국글로 권위를 세우면서 가지게 되기도 한 정신상태였다.
없어도 있는 척, 몰라도 아는 척하는 것이 다 그렇다.
더구나 오늘날 우리 국민들이 도시 산업 사회에서 이기주의로 살아가는 것,
수단방법 안가리고 나만 기분 좋게 살면 그만이란 생각을 하게 된 것은
교육의 결과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학교에서 입신출세를 목표로 하는, 서로 잡아먹는
교육을 해서 온 국민의 인간성과 민족성을 다 버려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우리가 살아나는 길은 잘못된 교육의 해독에서 벗어나고 모질고
능글맞은 정치가 온갖 수단으로 우리 정신을 마취해 놓은 상태에서 깨어나
민족의 본성을 도로 찾아 가지는 길밖에 없다.
여기서 교육 개혁의 문제가 된다.
어린 아이들이 교실에서 민주주의를 몸으로 겪도록 하게 하지 않고 민주
사회를 만들 수는 절대로 없다.
어린 아이들에게 깨끗한 우리 말을 이어주지 않고 우리 겨레 아이로 키울
수는 결코 없다.
교육 개혁 없이는 어떤 정책도 임시 땜질밖에 안된다.
다행하게도 새 정부에서 교육을 크게 개혁하겠다니 여간 반갑지 않다.
장관이 전문가가 아니라고 비난하는 사람이 있는데 전문가가 아니기에
개혁을 더 잘 할 것이다.
지금까지 우리 교육행정을 망쳐 놓은 것이 모두 전문가들이었으니까.
제발 우리 교육이 그저 상식 정도라도 됐으면 얼마나 좋겠나.
아이들 잡지 말고 아이들에게 깨끗한 겨레말을 이어주는 교육 말이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5월 5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