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작가 게르트 호프만의 장편 "행복"(김원익 역 찬섬)이 출간됐다.

가정과 사회에서 설 자리를 잃어가는 독일판 "고개숙인 아버지"얘기.

순진무구한 아이들의 시선으로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탐구한 작품이다.

소설은 아버지가 이삿짐을 싸는 장면부터 시작한다.

유명한 소설가가 되는 게 꿈이지만 돈버는 데는 재주가 없는 가장.

열살인 "나"와 다섯살난 여동생의 눈에 비친 아빠는 애처롭기 그지없다.

이상주의자인 아빠는 현실논리를 대변하는 엄마에게 천대받으며
무시당한다.

급기야 엄마는 무능한 남편과 갈라서기로 하고 슈퍼에서 우연히 알게 된
남자를 새로 맞으려 한다.

이제 자신의 행복을 찾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보기에 아빠는 진지하고 사물을 관찰하는 눈도 예사롭지
않다.

아빠를 좋아하는 만큼 엄마의 애인을 골탕먹이고 싶어하는 오누이의
행동이 앙증맞다.

이삿짐 트럭을 기다리는 동안 엄마 아빠가 헤어지게 된 과정과 동생이랑
떨어져 살아야 하는 아픔을 곱씹는 나.

마지막 순간까지 화해를 시도하던 아빠는 끝내 엄마의 마음을 돌리는데
실패한다.

이삿짐 트럭에 올라타고 부자가 밤길을 떠나는 마지막 장면은 IMF시대를
맞은 우리나라의 수많은 아버지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고 이 작품이 어두운 것만은 아니다.

솔직하고 천진스런 아이들의 시각이 곳곳에서 웃음을 자아낸다.

투명한 수채화같기도 하고 서투른 크레파스 그림같기도 한 동심의 세계가
"추락하는 아버지"의 뒷모습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고두현 기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7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