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검찰은 국제통화기금(IMF)금융지원을 불가피하게 만든 책임소재를
가리기 위해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수사 결과 책임소재가 분명하게 드러날 수 있을까.

마늘과 양파는 둘다 백합과 다년초이다.

마늘은 겉껍질을 벗기면 당장 몇쪽의 알맹이가 드러나는 반면 양파는
껍질을 몇겹 벗기고 벗겨도 끝내 알맹이가 드러나지 않는다.

아마도 경제위기의 원인을 파고들다 보면 몇겹으로 중첩된 요인을 만나게
될 것이다.

수사의 초점이 악화된 외환사정을 제때 제대로 대통령에게 보고했느냐의
여부에 모아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설사 보고채널이 제대로 작동되었더라도 당시 대통령이 무슨 머리로
뾰족한 대책을 세울 수 있었을까.

무지무죄라는 면죄사유 자체가 어떤 형벌보다 무거운 인격 손상일
것이지만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사직당국은 문제의 껍질을 벗기면 곧 분명히 알맹이가 드러날 것으로 알고
메스를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상 문제는 벗기고 벗겨도 계속 껍질만 드러나는 양파와 같은
성질의 것이다.

미증유의 경제위기로 번진 외환위기가 발생한 원인에 대해 국내외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분분하다.

첫째로 한국의 경제기초는 든든한데 동남아 제국의 통화위기 불길이 옮겨
붙어 억울하게 피해를 입은 사건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동남아 통화위기에 따라 해외금융기관들이 자산구성을 조정하면서 국내
금융기관의 차환요청을 거부하게 되었다.

이는 단기위주의 외채구조를 비롯한 구조적 문제와 연결된다.

이웃동네 불길이 옮겨 왔다해도 소방준비를 게을리한 셈이다.

동남아제국과 달리 국내경제의 기초여건이 든든하다고 본 과신, 미국과
일본의 쌍무적 협조로 해결 가능하리라는 기대 등으로 적정한 대응조치를
취하기를 지체했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둘째로 외환위기가 예측가능했을뿐 아니라 정책당국이 예측하고도 정책
판단의 오류를 범했다는 견해가 있다.

그럴듯한 개연성도 있고 국민에게 분노의 대상을 제공하는 편리한
입장이다.

국민에게는 책임이 없음을 확인시키고 몇사람에게 돌팔매질할 수 있어
좋다.

셋째로 동남아 사태가 아니었더라도 조만간 외환위기가 발생할 여건이
국내에 성숙되어 있었다는 견해가 가장 유력하다.

한보 기아 등 대기업 부실, 은행 부실화, 기술에서 앞선 일본과 생산비가
낮은 중국에 밀려 해마다 불어나는 경상수지 적자, 고비용 구조를 몰고 온
노조, 불투명하고 방만한 기업경영, 파행을 거듭하는 정치권, 금융개혁을
가로막는 집단이기주의 등 구조적 문제들이 한국경제의 신용도를 낮추고
국가 리스크를 높였다.

불꽂이 튀기만 하면 불길이 크게 번질 마른 섶이 산적돼 있었다.

90년대초 이래 아시아 신흥경제권으로 몰려온 외국자본이 조만간 썰물처럼
빠질 즈음 동남아나 한국 어디서건 불꽃이 점화될 수 있었다.

처음 두가지 견해는 피상적인 진단이어서 대증요법 처방밖에 나올 수 없다.

따라서 본격적으로 경제구조를 고치고 관행을 바로잡고 기업경쟁력을
강화하는 일에 소홀하고도 느긋할 수 있게 유혹한다.

위기의 원인은 구조적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문제가 수사당국의 손으로 단기간에 마무리될 성질이 아니다.

문제의 진실은 국회청문회를 열고, 학계의 연구발표가 활발히 전개되어도
속시원하게 밝히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도 그 방법이 선행되었어야 한다.

성급하고 서툰 양파까기는 눈물만 흘린다.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경제위기는 간단히 알맹이 실체를 밝히기 어렵다.

외환위기의 껍질은 벗기면 맞물린 금융위기를 만나고, 금융위기는 다시
실물경제의 위기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경영 노동 두측면의 실물경제 위기는 비자금 대중인기영합 등을 매개로
정치권과 연결된다.

허례허식이 뿌리깊고 가족.지역 중심의 사회문화가 합리주의와 국제기준의
투명성으로 밝히기 어려운 대목들을 안고 있다.

경제파국을 몰고 온 책임을 외면하고 요즘에도 위세를 부리고 있는 노조
운동을 보노라면 산업평화가 살얼음 위를 걷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외국자본의 한국기피현상을 이해할 수 있다.

경제위기의 책임 규명작업은 표피에 그쳐서는 안된다.

돌팔매의 표적이 자기자신이기도 하다는 인식을 국민 각계각층이 깊이
자각할 때 비로소 한국의 위기 탈출이 시작된다.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