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서린 그레이엄(워싱턴 포스트 명예회장)은 1917년 뉴욕의 백만장자
유진 메이어와 여기자 출신인 아그네스 언스트 사이의 5남매중 넷째로
태어났다.

시카고대학을 나와 잠시 "샌프란시스코 뉴스"기자로 뛸 때 그는 부두
노동자들과 함께 맥주에 위스키를 섞은 "보일러 메이커"를 마시며 파업
현장을 취재했다.

39년 봄 아버지 유진 메이어가 운영하는 워싱턴 포스트에 입사했으나
필립 그레이엄과 결혼하면서 그만뒀다.

20여년동안 평범한 가정주부의 길을 걷던 그가 신문경영인으로 변신한
것은 63년.

우울증에 시달리던 남편 필립의 자살로 인한 충격을 딛고 새로운 운명앞에
우뚝 섰다.

이후 그는 71년 미 국방부가 베트남전 수행중 거짓정보로 의회를 속였음을
입증하는 비밀문서를 보도한데 이어 72년 워터게이트 사건을 알림으로써
워싱턴포스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매체중 하나로 키워냈다.

그가 이같은 자신의 삶을 기록한 자서전(Personal History, 뉴욕 크노프
출판사)으로 올해 퓰리처상(전기.자서전 부문)을 수상했다.

외신은 그가 "나이 80에 이런 동화같은 일이 있다니"라며 기뻐했다고
전한다.

자서전을 쓴 사람이 퓰리처상을 받은 건 그가 여섯번째다.

퓰리처상은 미국의 신문왕 조셉 퓰리처(1847~1911)를 기려 1917년
제정됐으며 컬럼비아대학에서 관리한다.

언론 문학 논픽션 음악 등 22개 부문에 주어지는 미국 최고의 상이다.

올해엔 언론부문 14개 가운데 단체상인 공익보도와 특종보도를 제외한
개인상중 전문보도(린다 그린하우스)와 비평(미치코 가쿠타니), 뉴스사진
(마사 리알) 등 3개 부문에서 여성이 수상했다.

워터게이트사건에 대한 그레이엄의 회고는 발행인으로서의 대담성과
단호했던 의지를 보여준다.

"나는 편집자와 기자들의 판단을 믿었다.

다른 길이 없었다.

사실을 보도하고 있는 이상 밀고 나가야 했다.

우리는 외로웠다"

온갖 협박에도 굴하지 않고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건 아버지
유진 메이어가 물려준 신념때문이었다는 대목 또한 시사하는 바 크다.

"신문은 진실 추구를 위해 재산을 희생할 태세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공익을 위해 필요하다면"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18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