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내야 할 1백80억달러의 자금집행이 자꾸
미뤄지고 있다.

미의원들이 IMF지원법안에 갖가지 조건을 달아 법안통과가 늦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IMF에 출연해야 할 1백80억달러는 한국 등 금융위기를 겪고 있는
아시아국가들에 매우 중요하다.

자금이 고갈될 위기에 처한 IMF로서는 이 돈이 들어와야 아시아국가들에
제때에 자금을 지원할 수 있다.

더구나 1백82개 회원국중 최대 쿼터국인 미국이 빨리 IMF에 분담금을
출연해야 다른 회원국들도 선선히 자신들의 몫을 내놓게 된다.

특히 미국몫인 1백80억달러중에는 한국과 직접 연관된 돈이 35억달러나
들어 있다.

이 35억달러는 선진7개국(G7)이 한국에 주기로 한 협조융자액 80억달러중
일부.

G7의 이 협조융자금은 당초 지난 1~2월중에는 한국에 들어오기로 돼
있었다.

그러나 G7협조융자를 이끌고 있는 미국정부가 의회승인을 못받아 이 돈을
내놓지 않고 있어 아직까지 80억달러가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미의회의 조건들에는 IMF지원금의 용도제한에서부터 IMF와 국제무역기구
(WTO)의 통합에 이르기까지 별의별 게 다 들어있다.

지난주 상원세출위는 한국에 대한 IMF지원금의 사용처를 제한해야 한다는
조건부로 이 법안을 통과시켰다.

한국의 반도체 철강 자동차 섬유 등 미국과 경쟁하는 업종에는 지원금이
쓰여서는 안된다는 조건이었다.

이어 하원세출위는 IMF가 융자제도를 개혁하고 국제무역협정을 지키는
회원국들에만 지원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아 법안을 통과시켰다.

더군다나 앞으로 IMF와 WTO관리들이 만나서 두 기구의 통합문제를 검토해야
한다는 조건도 붙였다.

IMF가 차관내역 등 내부자료와 이사회의 회의결과를 공개해야 한다는 것도
조건사항이다.

현재 미의회의 IMF지원법안 승인여부는 불투명하다.

우선 하원과 상원이 내건 조건들이 너무 달라 본회의표결을 앞두고 양측의
의견조율이 쉽지 않다.

여기에다 여당인 민주당의원들조차 행정부의 뜻에 반하는 조건들을 내놓고
있다.

우여곡절끝에 이 법안이 조건부로 상.하원 본회의에서 통과된다해도
문제는 남는다.

까다로운 미국조건을 맞추다 보면 금융위기에 빠진 아시아국가들에 대한
지원이 상당기간 늦어질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한국 등 아시아의 경제위기상태는 예상보다 더 오래 갈 수도
있다.

로버트 루빈 미국재무장관이 최근 봅 리빙스턴 하원세출위원장에게 보낸
편지의 한 구절은 이같은 우려를 뒷받침한다.

"까다로운 조건을 붙인 법안이 의회에서 통과되더라도 IMF가 이 조건들
때문에 필요한 자금을 아시아국가들에 제때에 줄 수 없어 아시아경제위기는
더욱 악화될 것입니다."

<이정훈 기자>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3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