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이 정치권을 강타하고 있다.

안기부가 "북풍공작"에 직접 개입했다는 방대한 분량의 문건이 외부에
공개됨에 따라 정치권에서 북풍파문이 거세지고 있다.

구속된 안기부 이대성 전해외조사실장이 구속 직전 국민회의 정대철
부총재에게 전달한 이 문건은 지난 2년까지 최근 3년간의 안기부 내부
"북풍공작"이 집대성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총재는 이날 오전 자신의 통일시대준비위원회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북풍의 주체는 안기부가 아닌 정치권이라는게 극비문건의 주요 내용"
이라며 "현역의원을 포함 구여권 인사들이 북풍공작에 관여했다는 내용도
담겨있다"고 밝혔다.

그는 "대선 당시 중국 베이징에서 남북간 뒷거래가 있었던 내용도 포함돼
있다"며 "이에대한 김정일의 코멘트도 담겨있다"고 덧붙였다.

정부총재는 또 "당시 베이징에서 정치권인사가 북측관계자와 만나 나눈
대화내용까지 기록돼 있으나 국가안보차원에서 그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다"
고 말했다.

북풍파문의 뇌관인 정치권 연계설의 실체를 처음 밝힌 것이다.

정부총재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정치권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을뿐만 아니라
대북관계도 재설정해야 한다.

이와관련, 나종일 안기부2차장은 이날 국민회의당사에서 "정치보복시비 등
불필요한 파장이 일어날 수도 있지만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고 밝혀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나차장은 "분단으로 이득을 보는 세력들때문에 그동안 남북관계가 왜곡
됐다"며 "북풍문제가 밝혀지면 남북관계가 새로 정리되고 오히려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과 안기부가 이미 상당한 "자료"를 갖고 처리 수준을 조절하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여권에서는 북풍파문 확산이 자칫 통제권 밖으로 이탈할 가능성에
대해 우려하는 분위기도 있다.

일부에선 안기부 내부의 뿌리깊은 파벌싸움이 정보와 역정보를 흘리면서
이번 북풍파문을 증폭시켰다는 의심을 하고 있다.

이에따라 부작용을미리 예방한다는 차원에서 빨리 매듭짓자는 의견도
강하게 나오고 있다.

청와대도 조심스런 입장을 취하긴 마찬가지.

여권의 한축을 형성하고 있는 자민련의 입장은 국민회의와는 딴판이다.

변웅전 대변인은 "선거에 이기기위해선 적과의 동침도 서슴치 않는 정치
공작의 징후가 드러났는데도 이를 유야무야한다면 국가의 기본적인 법질서
조차 유지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은 펄펄 뛰고 있다.

한나라당은 이날 오전 이한동 대표 주재로 주요당직자회의를 열어 "필요
하다면 국회차원의 대책 등 가능한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강력히 반발했다.

맹형규 대변인은 "대북 정보라인을 모두 노출시키고 국가정보기관의
기능을 마비시키면서까지 "야당파괴"라는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려는 시도에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정치권은 "북풍"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으로 간주하고 있다.

<남궁덕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