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1차 경제대책조정회의는 국가통치권자가
경제를 확실히 챙긴다는 모습을 과시한 회의였다.

이와함께 국제사회가 요구하고 있는 수준 이상으로 한국이 과감한 개혁
개방을 추진할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듯한 성격의 회의였다.

대내외적인 효과를 노렸다는 얘기다.

이날 회의에서는 또 최근 수년간의 ''의례적''인 대통령주재 회의때와는
달리 하의상달보다는 상의하달의 강력한 리더십이 강조되는 모습을 보였다.

경제장관들이 제시한 정책대안에 대한 토론은 대부분 뚜렷한 결론을 내지
못했다.

반면 대통령의 개혁의지는 비중이 실려 즉석에서 법개정의 검토를 요청할
정도로 신속한 의사결정이 이뤄졌다.

김대통령은 회의를 시작하면서 "이회의는 지시나 정책결정을 내리는 곳이
아니라 자유스럽게 토론하는 곳이며 논의된 사항은 국무회의에 올려 결정할
것"이라며 회의성격을 규정했다.

경제정책에 관한한 토론을 거친후 결단을 내리는 최고의 의사결정기구로
자리잡을 전망이다.

강봉균 청와대정책기획수석은 이를 두고 "정책결정의 시스템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강 수석은 "경제부처 실무선에서 업무협의가 이뤄질 경우 마뜩치 않은
사안은 1~2개월이 걸리는 사례가 많았다"며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해 개혁
속도가 빨라질 수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경제장관들이 관계부처와 정책협의를 거치지 않은 아이디어를 경제대책조정
회의에 내놓고 참석자들로부터 검증을 받는 절차도 낯설었다.

이 때문에 회의에서는 이기호 노동부장관이 이자소득에 실업세를 물리는
아이디어가 제시되었으나 "금리인상의 나쁜 효과가 있다"는 반론이 제기돼
"없던 일"로 처리되는 전례없는 일이 벌어졌다.

경제장관이 국무회의에 들고간 안이 대부분 원안대로 통과되던 관행이
완전히 깨어져 버린 셈이다.

이같은 변화로 경제장관의 정책의지에 대한 "무게"가 반감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관계부처와의 사전조율이 철저히 이뤄진다면 반론도 적고 그만큼 무게도
실린다.

그러나 경제대책조정회의에 올린 경제장관의 안이 아이디어차원에서 그칠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 경제장관의 위상에 큰 손상을 줄 것이 때문이다.

또 대통령을 중심으로 최상층부에서 경제정책의 신속한 조율이 이뤄져
실무선의 참신한 견해는 무시될 가능성이 높다.

그대신 대통령의 아이디어는 "불가침"의 영역이 될 수도 있다.

이날 대통령이 제시한 공격적 M&A에 대한 제한을 없애는 등의 파격적인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반론이 없었던 점은 이같은 가능성을 보인 셈이다.

문민정부에서 겪었던 것처럼 "브레이크없는 기관차"가 재현될 가능성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정부조직의 속성상 대통령의 아이디어에 즉각적인 반론을 제기하기란 그리
쉽지 않기 때문이다.

또 관계부처간의 사전조율이 이뤄지지 않는데 따른 부작용도 드러나고 있다.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정책적으로 밀고나갈 필요가 있는 사안의 경우
경제장관이 대통령 앞에서 반론을 받아 좌절되는 리스크를 떠안지 않기 위해
아예 아이디어 자체를 내놓지 않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김수섭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