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차 경제대책조정회의는 대통령이 주재함에 따라 무엇보다 신속한 의사
결정이 이뤄져 과거 경제장관회의와 다른 모습을 보였다.

이날 회의에서는 외국인의 공격적 기업인수합병(M&A)에 관한 제한을 없애는
등의 중요한 사안에 대해 대통령의 전격적인 지시가 내려지기도 했다.

강봉균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은 이를 두고 "정책결정의 시스템이 바뀌었다"
고 말했다.

강 수석은 "경제부처 실무선에서 업무협의가 이뤄질 경우 마뜩치 않은
사안은 1~2개월이 걸리는 사례가 많았다"며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함으로써
개혁 속도가 빨라질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경제장관들이 관계부처와 정책협의를 전혀 거치지 않은 아이디어를 경제
대책조정회의에 내놓고 참석자들로부터 검증을 받는 절차도 낯설었다.

이 때문에 회의에서는 이기호 노동부장관이 이자소득에 실업세를 물리는
아이디어가 제시되었으나 "금리인상의 나쁜 효과가 있다"는 반론이 제기돼
"없던 일"로 처리됐다.

또 이 장관과 강봉균 수석이 대체로 일치된 견해를 보였던 20조원 규모의
공기업사업 조기집행문제도 "채권발행을 통해 재원을 마련해야 하나 현실적
으로 채권을 원활하게 발행할 수없는 처지"라는 지적에 힘을 잃었다.

경제장관이 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나 국무회의에 들고간 안이 대부분
원안대로 통과되던 관행이 완전히 깨어져 버린 셈이다.

이같은 정책결정과정은 신속한 개혁을 추진하는데 효과적이나 문제점도
적지 않게 노출되고 있다.

우선 경제장관의 정책의지에 대한 "무게"가 반감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관계부처와의 사전조율이 철저히 이뤄진다면 반론도 적고 그만큼 무게도
실리게 된다.

그러나 경제대책조정회의에 올라간 안이 아이디어차원에서 그칠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 경제장관의 위상에 큰 손상을 주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회의스타일을 보면 대통령을 중심으로 최상층부에서 경제정책의 신속한
조율이 이뤄지는 대신 실무선의 참신한 견해는 무시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따라 하의상달의 조직적인 정책결정보다 상의하달의 강력한 리더십이
강조되는 정책결정 메커니즘이 자리잡을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특히 이날 대통령이 제시한 공격적 M&A에 대한 제한을 없애는 등의 파격적
인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반론이 없었다.

문민정부에서 겪었던 것처럼 "브레이크없는 기관차"가 재현될 가능성이
우려되는 대목이다.

대통령의 아이디어에 즉각적인 반론을 제시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칫 대통령의 독주에 제동을 걸 장치가 없어지게 되는 셈이다.

또 관계부처간의 사전조율이 이뤄지지 않는데 따른 부작용도 우려된다.

다소 문제가 있더라도 정책적으로 밀고 나갈 필요가 있는 사안의 경우
경제장관이 대통령 앞에서 반론을 받아 좌절되는 리스크를 떠안지 않기 위해
아예 아이디어 자체를 내놓지 않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 김수섭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