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니 이런날도 있네요.

우승컵이 너무 무거웠어요.

사람들은 내가 착해 우승을 못한다고 했지만 내 자신은 끊임없이 ''도대체
뭐가 부족한가''를 고민할수 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끝까지 열심히 하니까 한꺼번에 보상을 받은게 아닌가 합니다.

이제야 비로소 저를 도와주신 여러분들에게 작은 보답을 한 느낌입니다"

9일 오후 연결된 김애숙(36)의 전화 목소리는 줄곧 떨렸다.

뭐랄까.

말로 형언하지 못할 그 무엇인가가 계속 복받쳐 오르는 모양이었다.

<>.8일 일본 LPG투어 개막전 다이킨 오키드오픈에서 김애숙의 우승은
한국여자프로골프사상 가장 값진 ''인간적 승리''였다.

그녀는 지난 85년 23세의 나이에 현해탄을 건너갔다.

초창기 이국땅에서의 프로생활은 흔히 듣는 멜로드라마였을 것이다.

그녀는 그후 13년동안 일본투어에서 꾸준히 견뎌냈다.

그러나 우승 트로피는 언제나 그녀를 비껴갔다.

90년이후 2~3위만 아홉번이었고 80년대를 합하면 우승직전에서 물러난 적이
셀수 없이 많았다.

처음엔 ''그러려니'' 했다.

그러나 세월이 가고 나이가 30대중반에 이르자 ''13년동안 실패한 첫승''은
더더욱 멀리 달아나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축복받을 만한 자에게 축복내리게 마련이다.

그녀를 아는 모든 사람들이 이번 우승을 진정 기뻐하는 것은 그녀가
살아온 길이 너무도 착하고 ''인간적''이었기 때문.

근년들어 일본으로 건너간 한국프로들중 그녀의 도움을 안받은 사람은 거의
없다.

그녀는 누구에게나 친절했고 누구에게나 ''자기일 같이'' 도움을 주었다.

그녀는 가장 먼저 일본으로 건너간 선배프로로서 한국의 후배들을 최대한
다독거리며 챙겼다.

그녀는 정규라운드 최종홀에서도 3m버디퍼트가 단 10cm모자라 우승기회를
연장으로 넘겨야 했다.

그녀는 다시 악몽이 시작되는가 했다.

연장 첫홀에서도 드라이버샷은 높은 나무뒤에 떨어졌다.

그녀는 생각했다.

''신이 있다면 제발 칠수 있게끔만 해달라고''

다행히 그녀는 70야드짜리 샌드웨지샷으로 나무를 넘겨 1.5m버디찬스를
만들어 우승했다.

그녀의 이번 우승은 그녀가 이제껏 호의적으로 대한 모든 사람들로부터의
''바람''이 13년만에 결실을 맺은 셈이다.

김애숙은 ''프로로서의 성취''이외에 그녀의 ''모든 과거''가 더 감격적인
스토리를 만들고 있다.

<김흥구 전문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