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경영에 누구보다 책임이 큰 은행장들은 연임하고 은행임원들만
"물갈이"한 인사내용이 금융개혁에 역행한다는 정치권 일각의 지적 때문이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이같은 지적이 타당하다고 인정하지만 두가지 점에서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하나는 자칫 관치금융 청산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배치될수 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대주주의 은행경영권행사 허용이라는 근본적인 해결책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기 때문이다.
이번 논란은 금융개혁에 대해 "준비안된" 새정부측과 그동안의 관치금융이
합작으로 빚어낸 소동이라고 본다.
지난 30여년동안 계속된 관치금융의 결과 재무부출신이 금융기관
경영진으로 광범위하게 진출해 MOFIA라고 불리는 인맥이 형성됐고,
업무상으로도 서로 협조할 일이 많은 등 금융당국과 일선 금융기관사이에
상당한 유착관계가 형성된 것이 사실이다.
지금의 외환위기도 몇몇 정책당국자보다 바로 이같이 잘못된 금융구조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고 봐야 한다.
이 점에서 과거의 타성에 젖은 현재의 은행경영진으로는 앞으로
기업재무구조개선 등을 유도하는데 한계가 있다고 보는 새정부측 시각은
일리가 있다.
하지만 수십년간 계속돼 굳어진 금융관행과 부조리를 새정부가 없애려는
것은 또다른 관치금융이 되기 쉽다.
이번에도 재경원이 서울은행 임원인사에 개입했다고 여간 말이 많은 것이
아니다.
정부가 대주주로서 당연한 권리를 행사했다고는 하지만 일처리가 매끄럽지
못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미리 경영개선명령을 내려 임기만료된 은행장들이 재신임받지
못하도록 했어야 했다는 지적도 있지만 문책정도에 대한 가이드라인이나
근거규정이 없는 상황에서 감독당국이 임의로 경영진을 바꾸도록 지시하는
것도 관치금융이라는 반론이 가능하다.
과거에도 은행장 3연임이나 문책경고를 받은 은행임원의 은행장
취임여부를 놓고 일관성 없는 감독행정이 없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는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경영개선명령을 받은 은행들이 오는 4월말까지 경영정상화계획을 내고
6월말까지 은감원의 승인을 받는 과정에서 이번에 문제가 된 은행장들에게
경영책임을 물으려면 먼저 객관적인 근거규정이 마련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문제는 은행대주주가 경영권을 행사할때 저절로
해소된다고 본다.
잘못된 인사는 부실경영을 낳고 부실경영에 따른 불이익은 최종적으로
대주주가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민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큰 금융기관에는 공공성이 요구되는 만큼
일관성있고 철저한 사후감독이 필요하다.
하지만 하루빨리 관치금융의 폐해를 일소하고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은행주인 찾아주기 외에는 달리 묘안이 없다.
새정부측은 금융개혁에 대한 명확한 청사진을 제시하고, 경영권부터
과감하게 시장자율에 맡기도록 결단을 내려야 할때라고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