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화교기업인들이 경제위기의 와중에서 새로운 사업기회를 잡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 "역전의 경영"을 노릴만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외신들은 인도네시아의 화교들이 현지인들에게 약탈당하는 사례를
타전하고 있다.

그러나 약탈의 대상은 현지인들과 얼굴을 맞대고 살아가는 생필품상인
들이다.

굴지의 기업군을 거느리는 화교기업인들은 오히려 투자확대나 조직재정비에
나서고 있다.

자본력과 정보망을 총동원해 재도약의 기회로 삼겠다는 자세다.

부동산개발과 유통업을 하는 필리핀의 SM프라임홀딩스는 앞으로 수년동안
한해 2개씩 대형쇼핑몰을 건설할 계획이다.

"지금은 태풍이 몰아닥친 상태다.

낡은 건물이 정리되고나면 더 큰 성장이 가능하다"(헨리 씨 회장)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태국 사하위리야그룹도 내년이후 부동산개발 컴퓨터사업 등이 호황을 맞을
것으로 예상, 투자규모를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인도네시아 굴지의 재벌그룹인 시날마스는 경제위기를 계기로 사업재편을
완전히 마무리할 방침이다.

시날마스는 같은 화교계자본과 함께 산하의 은행을 지난 1월 합병했다.

앞으로는 종이.펄프 식품 부동산 금융을 4대사업으로 집약, 재도약을
꾀하고 있다.

화교기업인들이 위기를 기회로 받아들이는 여유를 보일 수 있는 것은
평소부터 위기를 대비했기 때문이다.

한 인도네시아 화교기업인은 "내가 알고 있는 화교기업인들은 이미 2~3년
전에 자산을 국외로 빼내, 관리해왔다"며 "지금은 오히려 인도네시아로 갖고
들어올 시점으로 본다"고 말하고 있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은 평소부터 국내정세가 불안했기 때문에 화교기업인
들이 진작에 재산을 분산시켜놓고 있었다는 얘기다.

동남아국들의 정부가 경제재건을 위해 화교자본을 내심 필요로 하는 것도
이들에게는 예상밖으로 좋은 사업환경이 되고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말레이시아다.

말레이시아정부는 부의 편중을 막기위해 화교자본의 활동에 엄격한 제한을
가해왔다.

그러나 경제위기를 맞아 신설된 전국경제행동위원회의 다임 자이누딘
대통령경제고문은 최근 "누구의 자본인가를 불문하고 준비된 기업에게
말레이계기업의 인수합병을 허용하겠다"고 발표했다.

화교기업인들에게는 그동안 넘보지 못했던 분야에까지 손댈 수 있는
호기가 찾아온 셈이다.

<박재림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3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