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야구선수가 발명가겸 기업가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공을 놓고 금속을 만지기 30년.

통조림 산업에 획기적인 불량제품 검색기를 개발함으로써 이 업계의
스타로 부상했다.

각고의 노력끝에 인생게임에서 홈런을 날린 것이다.

밴쿠버 인근 델타지역에서 캔퍼시픽 엔지니어링사를 경영하고 있는
정운철(57) 사장은 지난 91년 "캔가드(Canguard)"라는 장비를 발명해
상업화함으로써 일약 세계 통조림업계의 주목을 받았다.

캔가드는 한마디로 캔에 새는 곳이 없는지를 찾아내는 기계다.

밀봉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틈이 생기면 이를통해 캔안의 진공속으로 균이
들어가 단백질을 먹고 살면서 배설하게 되는데 이 배설물속에 녹이 있어
인체에 매우 해롭다.

캐나다 미국 등에선 샘플검사에서 통조림 10만개중 4개이상이 불완전
밀폐품일 경우 전제품 출고가 불허되고 있다.

따라서 통조림업체들은 불량품을 찾아내기 위해 그동안 사원들이 달라붙어
일일이 밀폐상태를 점검해야 했다.

그러던 차에 캔가드가 발명됨으로써 일거에 불량품 검색이 기계화된
것이다.

캔가드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만들어지며 무게 1백50파운드(6백80kg),
직경 21인치(53.3cm)의 둥그런 모양이다.

1분에 3백개의 통조림을 검사할 수 있다.

캐나다 미국 일본 유럽 등 49개국에서 특허를 받았다.

가격은 미화 5만달러.

작년에 생산된 30대를 포함해 모두 1백대가량을 팔았다.

전량 주문생산이며 올해 1백대를 생산할 예정이다.

올해엔 1분에 6백개의 통조림을 검사할 수 있는 신제품도 내놓을 계획이다.

수요는 엄청나다.

북미지역에서만 연간 3천대, 세계적으론 10만대로 추산되고 있다.

정사장의 인생은 야구와 통조림이 전부다.

서울 경동고 시절부터 철도청 해운공사 육군을 거치기까지 9년동안 야구
선수로 뛰었다.

해운공사 야구선수 시절인 64년 대만에 원정경기 갔다가 양송이 통조림
공장을 견학하면서 받은 어떤 영감같은 것이 운명을 결정지었다.

육군 야구부 시절엔 한양공대 야간부에서 기계학을 공부했다.

66년 군제대후 통조림회사인 서울제관에 입사했고 일본에서 2년동안
연수했다.

69년엔 캐나다로 이주했다.

이주직후 밴쿠버에서 연어통조림회사인 BC패커즈에서 근무했다.

정식직원이 아닌 보조원으로서였다.

그러나 곧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을 거듭한 끝에 입사 10년만에 이사급에
올랐으며 부사장을 끝으로 91년 퇴직했다.

그는 퇴직후 그때까지 저축한 6만캐나다달러를 밑천삼아 곧바로 회사를
차렸다.

6년전에 착상해 은밀히 개발을 추진해온 캔가드를 생산하기 위해서였다.

창립 5개월만인 91년8월 시제품 생산에 성공했고 92년부터 본격 생산에
들어갔다.

나이가 들면서 정사장은 요즘 고민에 빠졌다.

공장을 계속 확장할지 아니면 특허료만 받아 여생을 즐길지 결론이 안서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의욕이 솟기도 하고 또 한편으론 이제 좀 쉬고 싶다는 생각도
간절하다.

어떻게 결론이 나든 새로운 발명을 위한 연구활동만은 계속할 생각이다.

"과학이 발달해야만 국가가 건전하게 발전한다"는 최형섭 전과기처장관의
말이 뇌리를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밴쿠버=정평국 특파원>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