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말 이후 파국으로 치닫던 한국경제가 요즈음 다소 안정을 찾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외채 협상타결과 대기업 집단의 구조조정 노력, 그리고 노.사.정 합의도출
등의 경제개혁 의지가 IMF와 외국의 한국경제에 대한 믿음을 높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현재의 경제위기로부터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이다.

이미 지나간 과거를 돌이킬 수는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과거로부터 교훈을 얻어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위기를 사전에 방지함으로써 경제를 잘 굴러가게 하는 것이다.

새로 출범할 정부도 작금의 경제위기를 초래한 경위를 파악하기 위해
경제청문회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이 또한 과거에서 배움으로써 미래에 재연될 수 있는 경제위기를 효과적
으로 막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경제청문회에서는 1차적인 행정적 책임소재를 파악하여 경제위기에
대한 조기경보 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반적인 경제운영의 틀에
대한 점검이라는 더 본질적인 문제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업은 작금의 경제위기가 시장
경제적 경제운영에 의한 결과인지, 아니면 시장을 믿지 못하고 이를 억압한
결과인지를 명확하게 가리는 작업일 것이다.

교훈을 잘못 얻으면 또 다른 IMF사태가 언제 또 우리를 찾아올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툭하면 지나친 시장경제적 경제운영, 재벌의 방만한 기업운영과 문어발식
사업확장, 그리고 책임경영 체제의 부재가 오늘의 경제위기를 초래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시장여건은 여러가지 법적제도와 비공식적 제약으로 구성되고 각
경제주체는 그렇게 주어진 여건아래 최적화를 한다.

그래서 우리는 경제주체들의 최적화행위에 의해 나타난 현상을 비난하기
전에 그들 경제 주체들이 활동하는 시장이 얼마나 자유롭게 작동할 수
있었는가에 대한 질문을 먼저 해야 한다.

상호지급보증 그 자체를 문제삼을 것이 아니라 상호지급보증이라는 장치가
금융자원을 조달하기에 가장 용이한 수단일 수밖에 없었던 금융시장 여건을
먼저 진단해보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른바 문어발식 확장이라고 비난받는 복합기업결합을 통해 거래비용을
감소시켜 대외무역을 발판으로 한 한국의 경제성장에 커다란 공헌을 할 수
있었던 사실도 고려해야 한다.

많은 기업집단을 효과적으로 조직화하고 운영하기 위해서 종합기획실이나
비서실도 생겨난 것이리라.

그래서 문어발식 확장, 방만한 경영, 또는 무분별한 사업확장이라는
용어는 온당하지 못하다.

이러한 용어들은 모두 기업조직이 활동하는 시장여건에 대한 검토없이
무책임하게 내뱉어지는 말들이다.

시장은 비효율적인 자원배분을 오랫동안 방치하지 않는다.

지극히 제한된 인간의 지식과 정보하에서 행해지는 정부의 산업정책,
말로만 그친 규제완화, 움직일 수 없는 노동시장의 경직성, 금융기관의
관치화 등 여건아래 기업이 움직일 수 있는 운신의 폭은 극히 제한되고,
따라서 자원배분은 왜곡되며 그 결과는 오늘과 같은 경제파국이다.

시장은 억압당할수록 그 처벌의 강도를 높인다.

작금의 경제위기도 시장의 처벌과정으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작은 정부가 할 일들은 별로 많지 않다.

정부는 경쟁을 보호하는 규칙을 제정하고 이를 엄정하게 집행하는 일에
그쳐야 한다.

"빅딜"을 하든 "스물딜"을 하든 그것은 전적으로 기업가의 몫이다.

종합기획실이나 회장비서실을 유지하든 말든 그것도 그들의 일이다.

다른 어느 누구도 그들보다 더 잘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슨 사업에 돈을 얼마나 투자하고 어떻게 사업을 이끌어갈 것인가에 대해
가장 고민하는 사람은 바로 돈의 주인이다.

잘못 투자하고 잘못 경영하여 기업을 망해 먹는다고 해도 돈의 주인이
가장 덜 망해 먹는다.

경제개혁이라는 이름아래 정부가 사기업에 관여하기 시작하면 경제를
살리겠다는 정책자의 선의와는 상관업이 또 다른 정경유착의 고리가 형성될
뿐이다.

그리고 정경유착의 궁극적인 원인제공자는 자원배분에 있어 강제력을
보유하는 큰 정부임을 꼭 깨달을 필요가 있다.

정부가 작아지고 강제력이 없으면 정경유착은 결코 생길 수 없다.

다행히도 김대중 대통령당선자는 시장원리에 입각한 경제운영을 크게
강조하고 있다.

대통령 취임이후에도 변함없이 시장경제 창달에 노력해줄 것을 기대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에 포진한 경제참모 역시 시장경제에 대한 철학과
믿음을 대통령과 함께 해야 할 것이다.

대통령과 그 보좌관들이 시장경제 원리에 충실할수록 우리경제의 회생과
발전은 빠르게 이루어질 것이다.

시장에 대한 믿음은 머리에서 가슴까지 철저해야 한다.

머리끝에서만 맴도는 시장 개념만으로는 시장경제를 충실하게 실천할 수가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