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헌재 비상경제대책위원회 실무기획단장을 초청해 열린 9일의 전경련
기조실운영위원회는 대기업 정책에 대한 "원론 찬성, 각론 보완"의 메시지를
새정부측에 전하는 자리였다.

기업마다 사정이 다르고 경영환경이 최악인 상황에서 일률적인 적용과
마감시한 강제는 실물경제에 막대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재계의
우려가 전달됐다.

30대그룹 기조실 임원들의 이날 건의는 한달보름여 앞으로 1차 마감이
다가온 상호지급보증해소문제에 집중됐다.

자기자본대비 1백% 초과분에 대한 지급보증해소의 예외적용 및 유예
건의가 특히 많았다.

지난해 4월 30대그룹에 신규진입한 모그룹의 한 임원은 "수차례 단계적
제한조치를 받으며 지보규모를 줄여온 기존 30대그룹과 우리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며 "해소시한을 똑 같이 적용한다면 신규진입그룹들의 경영압박이
심화되는 만큼 유예기간을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구조고도화를 위한 투자의 경우는 지급보증제한을 계속 예외적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모그룹 관계자는 "정부의 지도에 적극 호응해 신기술 도입과 첨단기술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면서 지급보증규모가 크게 늘었다"며 "차입성 보증이라고
해서 무조건 없애서는 국가의 산업구조조정 자체가 어려워진다"고 우려를
표명했다.

특히 보증요구 관행을 버리지 않고 있는 금융권의 자세가 계속되는 한
지급보증해소는 "공염불"이 될 것이란 지적도 나왔다.

손병두 전경련부회장은 "국제통화기금(IMF)체제가 시작된 지난해 12월 이후
금융기관들이 부실채권발생을 우려해 신규차입은 물론 기존 대출의 상환
연기시에도 추가보증을 요구하고 있다"며 "금융관행의 개선이 병행돼야
지보해소가 실효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손부회장은 또 "상호지급보증 해소시한을 넘기는 기업에 대해 공정거래법상
과징금 부과와 형법상 처벌조항까지 있는데 비대위가 가산금리까지 적용
한다는 것은 중복처벌에 해당된다"며 관련 조항의 정비도 요청했다.

이밖에 개혁정책의 강도가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었다.

소액주주의 권한을 강화하기 위한 "누적투표제"와 오너의 전횡을 차단하기
위해 추진되고 있는 그룹 기조실 폐지 등이 초래할 부작용을 우려하는
소리가 특히 높았다.

누적투표제의 경우 외국에서도 시행과정에 문제가 많은 것으로 드러난 만큼
신중한 검토가 사전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재계의 입장이다.

기조실 정리와 관련,임원들은 기업의 형편에 따라 자연스럽게 처리할 사항
으로 지배주주의 경영권 참여가 보장되는 지주회사 설립이 허용되면 기업들
이 먼저 없앨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경련 관계자는 "기조실이 없어진다면 결합재무제표의 작성과 그룹차원의
구조조정 계획 마련, 상호지급보증해소 추진 등의 일은 누가 하나"고 되묻고
"역기능이 있다고 무조건 정리한다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모그룹 임원은 "구조조정 계획에 담을 내용이나 제출마감
등에 대해 새정부측이 기업의 자율을 강조했지만 이미 대기업정책의 방향이
잡힌 만큼 구조조정을 가속화해 달라는 요청을 하고 있다는 감을 받았다"고
말했다.

부작용의 크기를 뻔히 알면서도 새정부의 개혁정책에 적극 동참해야 하는
재계의 고민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권영설 기자>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