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고유의 2대 명절의 하나인 설을 전후해 보고 느낀 풍경들이 예년과는
사뭇 다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하며 서로 나누는 덕담이 새삼 의미있게 들리고
조심스럽기까지 하며, 또 누군가에게는 황당하게 마저 들렸을지도 모른다.

현란한 야경속에 화려하게만 느껴지던 민족대이동의 줄이은 차량행진도
그다지 화려하게 느껴지지가 않았다.

선물의 경우 1만원짜리 이하의 비누, 치약, 양말 세트 등 소위 "IMF형
선물"이 유행하고, 세뱃돈도 천원과 오천원권 위주로 실속있게 주어졌다고
한다.

10만원짜리 갈비 세트나 백화점 상품권이 주류를 이루고 유치원생 자녀에게
까지 빳빳한 만원권이 주어지던 예년의 설과는 커다란 차이가 아닐수 없다.

우리가 당당히 선진국으로 OECD에 가입하고 맞은 지난해 설은 "OECD 설"
이라고 한다면 IMF 체제하에 맞은 이번 설은 "IMF 설"이라고 할수 있다.

왠지 초라하고 가난해진 느낌이 든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통화가치가 떨어지고 물가가 오른 것을 생각해 볼때 국가적인 자산측면
에서나 개인적인 구매력 관점에서나 가난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가난을 생각하기에 앞서 IMF설을 계기로 그동안 실속보다는 허례
허식에 얽매여 우리의 미풍양속을 외면한 채 물질적 풍요만을 중요시하지
않았는지 반성해 보는 값진 기회를 가져 보았으면 한다.

설날을 근신하고 조심하는 날이라고 해서 한자어로는 신일이라고 쓴다.

단아하게 설빔을 차려입고 차분함속에서 차례를 지낸후 웃어른께 새해
문안을 드리고 덕담을 나누며 소박하나마 정성스레 마련한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우리가 지녀온 설의 미풍양속이다.

이러한 미풍약속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어려운 시기에 참으로 서로를
걱정해 주고 위로해 주면서 따뜻하게 보낸 설이었다면, OECD 설보다는 IMF
설이 정신적으로 더욱 성숙하고 풍요로운 설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2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