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 사회에서 ‘인구소멸’과 ‘지방소멸’이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이 두 개념은 동일하지 않다. 인구소멸은 국가 전체의 인구 감소, 특히 저출생으로 인한 인구의 자연 감소를 의미하며 지방소멸은 특정 지역의 인구 감소와 그에 따른 경제적 쇠퇴를 뜻한다. 인구소멸이 지방소멸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이 둘을 동일하게 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각각의 문제에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특히, 지역소멸의 주요 원인으로 20대 젊은 층이 대학에 진학하거나 일자리를 찾아 도시나 수도권으로 이동하는 현상을 꼽을 수 있다. 이는 지방에서 젊은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경제가 쇠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특정 지역의 대학이 문을 닫거나 주요 기업이 철수하면서 그 지역의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는 경우가 있다. 따라서 지역 내에 양질의 교육 기회와 일자리를 제공해 인구 유출을 막는 게 필수적이다.현재 정부는 인구소멸과 지방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대응 방식은 지역별 특성과 필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한 채 일률적인 정책을 추진하는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지방자치단체는 자율성과 책임성을 잃게 됐다. 중앙집권적 접근은 문제 해결에 오히려 장애가 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정부가 매년 1조원씩 10년간 지원하는 지방소멸대응기금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대책을 수립하는 것을 넘어, 지방자치단체가 실질적으로 주도할 수 있도록 조세와 같은 다양한 권한을 지자체로 이양하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또 지자체는 지역 특성에 맞는 맞춤형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이를 위
어린이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부모다. 하지만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 그 어떤 사람 못지않게 선생님이 중요해진다. 아이들에게 선생님은 존경의 대상이고 자신이 얼마나 멋진 아이인지 인정받아야 할 사람들 리스트 중 ‘넘버원’이다. 어릴 적 나에게 큰 영향을 준 선생님 한두 분이 없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초등학교 4학년 때 선생님을 잊을 수 없다. 그분은 음악에 열정을 가진 분이셨다. 매일 아침 피리를 함께 부는 시간을 가졌는데, 매일 연습하다 보니 어려운 곡도 곧잘 연주하게 됐다. 친구들과 떨리지만 자신 있게 피리를 연주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피리를 불며 즐거워했다.또 즐거운 시간은 매일 오후 집에 돌아가기 전 몇 분씩 가진 퀴즈 타임이었다. 우리 스스로 퀴즈를 내 맞히도록 하셨는데, 다른 친구들이 못 맞힐 만한 고난도의 문제를 내는 게 관건이었다. 반 친구들이 못 풀 만한 퀴즈를 내기 위해 나는 많은 책을 읽었다. 역사와 추리 소설을 좋아하던 나는 많은 책을 읽어 친구들이 답하지 못하는 문제를 내며 통쾌해했다. 인생에서 나 스스로 ‘더 알고 싶다’고 생각해 본 것이 이때가 처음이다.중학교 1학년 때는 사춘기가 시작됐기 때문인지 선생님이 좀 더 아이돌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선생님의 외모나 느낌이 나에게는 중요한 동기 부여가 됐다. 당시 국어 선생님은 오뚝한 코에 피부가 뽀얀 영화배우 같은 분이셨다. 그런데 그분이 더 영화배우 같았던 이유는 그분의 문학에 대한 사랑이었다. 국어 교과서에서 한 단원이 끝날 때마다 공부할 문제 안에 작문이 포함돼 있었다. 숙제를 싫어했지만, 글쓰기를 좋아하는 선생님을 생각해 작문
해방 이후 이 땅에서는 좌우 이념 대립이 극심했다. 그 과정에서 좌우 이념이 뭔지도 모르는 민간인 희생도 적지 않았다. 연극 ‘로풍찬 유랑극장’은 6·25전쟁 당시 낮에는 국군, 밤에는 인민군이 마을을 들쑤시던 당시의 전남 보성 새재마을을 배경으로 한다.이곳에서 여관집을 운영하는 김삼랑 씨네. 빨갱이 아들은 산으로 들어가 생사를 알 수 없고, 경찰인 처남은 공산당 손에 죽었다. 이 와중에 마을에 유랑극단이 들어온다. 로풍찬 단장이 이끄는 ‘로풍찬 유랑극단’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번안한 ‘노민호와 주인애’를 이 시골에서 공연하려고 한다. 주민들은 이들을 곱지 않게 본다. 사람이 죽어 나가는데 뭔 놈의 연극이냐고.사실 이 말은 지금도 간혹 듣는다. 2년 전 서울 이태원 참사 이후 각종 공연과 축제가 줄줄이 취소됐다.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와 추모를 위해 예술인 스스로 결정한 것도 있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일방적으로 중단한 행사도 많았다. ‘사람이 죽었는데 무슨 공연이냐’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이에 반발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사람마다 다른 애도 방식이 있는데 ‘슬픔’만을 강요하는 것이 과연 옳으냐는 질문이었다.나는 이 말에 동의한다. 예술은 기분 좋을 때, 등 따습고 배부를 때만 접하는 것이 아니다. 1941년 나치 독일이 소련을 침공해 레닌그라드를 900일간 봉쇄했다. 시민 150만 명이 굶주림 등으로 사망했다. 그 기간에도 레닌그라드의 뮤지컬 코미디 극장은 공연을 계속했다. 어느 날은 ‘삼총사’ 공연을 하던 중 삼총사 배우 중 한 명이 굶주림으로 죽어 두 명의 총사만으로 공연을 마쳤다고 한다. 포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