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대통령은 와병설에 시달렸다.

대통령궁의 대변인이 나서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거듭 설명
했지만 자카르트주식시장은 단며칠만에 20%의 낙폭을 기록하고 루피아화도
맥을 못추었다.

그 와중에서도 특히 CMNP와 비만타라시트라라는 두 회사의 주가는 39%와
54%의 하락폭을 보였다.

모두 수하르토의 자식들이 거느리는 기업이다.

일반사람들은 수하르토가 없다면 두 회사의 값어치가 평소의 반토막정도
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인도네시아=(주)수하르토"임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현재 국제통화기금(IMF)은 이같은 구조를 지탱하는 기득권층에 타격을
가하라고 요구한다.

경제개혁은 이들이 가진 거미줄같은 권력을 칼로 자르는 것이란 주장과
함께.

따라서 그동안 독점적 권한을 통해 형성돼 온 기득권층의 권한을 얼마나
공정한 경쟁을 통해 나눠가질 수 있는 구조로 만드느냐에 인도네시아위기의
향배가 달려있다.

이는 63억달러(97년 6월말 추정치)에 달하는 것으로 보이는 수하르토일가의
재산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져 결코 간단치 않은 작업이 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10월말 인도네시아정부가 전격적으로 대통령일가와 관련이 있는
안드로메다은행(차남 밤방) 인두스트리은행(차녀 티틱) 자카르타은행(동생
프로보스테조)을 포함한 16개 은행에 대해 영업허가를 취소했을 때만 해도
국제금융시장은 환영하는 분위기였다.

음양으로 수하르토의 사금고 역할을 해왔던 은행이기 때문에 영업정지는
곧 성역의 틀을 깨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루피아화가 단번에 10%나 회복됐다는 것이 이를 뒷받침했다.

그러나 기득권층의 저항은 곧바로 시작됐다.

밤방은 중앙은행장을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프로보스테조는 무단으로
은행문을 여는 등 정부결정을 아예 무시하는 행동을 보였다.

정부도 문제다.

애당초 개혁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없었다.

연기 또는 재검토하기로 했던 1백56개 공공프로젝트가 슬글슬금 다시
추진되고 있는 것이 그 증거다.

인도네시아의 미래를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미 기득권층의 결속력이
수하르토가 나서도 어쩔 수 없는 단계에 들어선 것으로 보고 있다.

권력이란 것이 대개 피라미드식의 계급구조를 보이는 것처럼 수하르토의
일가친척들은 관료 혹은 화교비즈니스맨들과 복잡다단한 거미줄처럼 묶여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들(수하르토 일가)의 명함"이라는 자카르타
사업가들의 우스개소리는 어떤 공정한 논리보다도 쉽게 관료를 뚫고 지날 수
있는 힘을 가진 게 수하르토일가와의 연줄임을 표현한다.

인도네시아 주요재벌중 하나인 화교계의 살림그룹은 밤방 토미 등
수하르토의 자식들과, 자식들은 다시 군부와 연계돼 있다.

싱가포르의 한 인도네시아전문가는 "수하르토가 고민에 빠져들었고 국민
들의 불만은 폭발직전에 다다랐다"고 보고 있다.

30여년동안 자신이 키워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도네시아경제가 "IMF
수술대"에 올랐지만 "한국식 과거청산"이 맘에 걸려 결단을 내릴 수가 없다.

국민적 불만이 분출돼 나올 때면 표적이 되는 것은 늘상 화교들이었다.

시골 구석구석에 이르기까지 모든 상권을 쥐고 있는 화교상인들은
인도네시아 국민이 상대적 박탈감에 빠졌다고 보여지면 서둘러 가게문을
걸어잠궈야 했다.

이에 비춰 올들어 반둥을 비롯한 일부 지방도시에서 화교상점에 대한
주민데모가 발생했다는 것은 인도네시아 위기가 어느 지점에까지 왔는가를
짐작케 한다.

<박재림 기자>


[[[ 인도네시아 경제위기일지 ]]]

97. 8.14 =루피아화 변동환율제 전환.
고금리로 시중자금의 유동성 억제.

97. 9. 3 =통화가치와 주가지수 본격하락.
공공 프로젝트 재검토및 은행개혁안 발표.

97.10. 8 =IMF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등과 협의 개시.
3백70억달러 지원합의.

97.11. 1 =수하르토일가 소유은행을 포함, 16개 은행폐쇄
(수하르토 차남은 후에 신규 허가를 얻어 재영업).

97.12.22 =국제신용평가기관 무디스사 인도네시아의 신용등급을
정크본드급으로 하향조정.

98. 1. 6 =IMF권고 무시한 신년예산안 발표.

98. 1. 8 =IMF 인도네시아 긴급점검반 가동.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