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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자칼럼] 외국인 경제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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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94년 12월12일(음력) 고종은 조선국왕의 독립을 선언한다.

    다음날 조선주재 일본공사 이노우에는 본국정부에 전보를 띄운다.

    "나는 형식적으로나마 조선의 독립체제를 발족시키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것을 실현시키는데 있어서 돈이 절대로 필요하다.

    ...5개월이나 밀린 관리들의 봉급을 반드시 정리해야 한다.

    ...우선 30만원이 급히 있어야 한다.

    그 다음 대책을 위해 5백만원이 필요하다"

    일본 외무대신 무쓰 무네미쓰는 회답한다.

    "조선정부의 차관문제는 성공할 가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직 정부의 결심을 알리기 곤란하다"

    이노우에 공사는 다시 급전을 띄운다.

    "...30만원과 5백만원의 국채가 해결되지 않으면 조선정부는 이 해(1894)를
    무사히 넘기기 어렵다"

    일본은 조선의 관세를 담보로 해서 연8푼으로 우선 13만원을 융자한다.

    이노우에는 다시 5백만원 지원을 독촉한다.

    "빨리 주선하지 않으면 여러가지 사변이 일어날 듯하다.

    ...조선정부내에서 수구파와 진보파 사이에 충돌이 벌어졌다.

    이유는 간단하다.

    자금이 없어 아무 개혁도 착수하지 못하고 있다"

    1895년 2월16일(음력) 탁지대신 어윤중 등과 일본 법제국장관 스에마쓰및
    은행원 쓰루하라 데이기치가 서울서 대좌한다.

    일본측은 이자 연1할, 담보는 모든 관세, 대여경비 1만5천원 삭감,
    외국상인들에게 빌려쓴 돈 50만원을 공제하고 2백30만원을 빌려주겠다는
    3백만원 차관제의를 내놓는다.

    조선측이 가혹하다고 사정한다.

    그해 4월30일(음력) 금리 연6푼, 상환기간 5년, 담보는 우선 조선정부의
    조세로 하고 다른 외국 채무가 청산되면 관세수입으로 바꾸는 조건에서
    차관조약이 체결된다.

    다음해 조선 조정은 영국인 백탁안(Brown J McLeavy)을 탁지부고문으로
    앉히고 재정쓰임새를 절약해 1년만에 3백만원을 한꺼번에 상환한다.

    캉드쉬 IMF 총재가 폴 볼커 전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을 한국의
    "경제고문"으로 추천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백년전 상황과 현실이 너무나 닮은꼴인 것 같아 씁쓸하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14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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